[HW_03]_우리나라 상하수도시설의 역사 및 발전
- 최초 등록일
- 2011.11.21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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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주 옛날의 인류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용천(지하수), 하천 또는 호소 등에서 얻었다. 점차 도시가 형성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자 우물로는 양적 부족과 수질적으로도 위험하게 되었다. 보다 깨끗한 하천수의 사용도 인구의 집중으로 오염되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위생수도를 만들어야만 했다. 고대의 수도는 모두 이러한 경과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목차
1.상수도의 역사
2.하수도의 역사
본문내용
일본 요꼬하마시에서 처음으로 주철관, 펌프, 여과지를 이용한 수도 완성
이상과 같이 근대식 우생시설로서 수도시설은 비교적 늦은 1800년대에 들어와서 물을 여과하므로 인공적인 정수처리를 하게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상수도 연혁을 보면 1880년에 부산에서 일본 거류민단에게 급수하기 위해서 시설한 것을 시작으로 1908년에 서울시가 한강의 뚝도 수원지를 설치하여 물을 정수하여 급수하게 되었으며 그 후 인천, 평양, 대구(1918) 등지에 상수도 공급이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약 90%에 이르고 있으며,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이태리,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급수 보급률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수도의 유지, 관리, 운영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수도 보급률이 60%에도 미달되는 등 수도시설의 건설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집트의 Joseph의 우물
로마 아피아 수도교
우리나라의 상수도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으로 해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교차한다. 이에 따라 강우의 계절적인 편재가 매우 심하여 계절적인 물의 부족으로 인한 생활의 위협이 많았다. 그러나 음료수에 관하여는 화강암지대가 많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물을 대량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은 토기관으로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것인데, 이것으로써 신라인들의 물에 대한 높은 인식과 기술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상들의 우수한 기술을 전수받지 못하여 이후 조선 말기까지 수도라고 칭할 만한 시설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