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진경 문화
- 최초 등록일
- 2011.11.28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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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병자호란이후 서인들을 중심으로 한 율곡학파는 조선 중화주의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 중화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여 한글 문학과 동국진체, 풍속화가 등장하였으며 ,겸재 정선은 북방화법과 남방화법을 절충하여 조선의 산하와 인물들을 그린 진경산수화를 창안하였다.
목차
1.머릿말
2.진경문화
1) 한글문학
2) 한문문학
3) 진경 산수화
4)서예(동국진체東國眞體의 등장)
5) 풍속화
본문내용
2. 진경문화
이미 선조 때로부터 일기 시작한 조선 고유문화에 대한 관심과 접근은 숙종 후반 이후 자기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인식과 자기문화에 대한 자신감 위에서 중국의 관념산수가 아닌 조선의 자연, 인물과 풍물과 풍속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예술을 꽃피우게 된다. 시, 서, 화 모두에 일관되게 관철되었던 이 같은 경향은 소재의 선택은물론 표현수법에 있어서도 중국적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것을 추구하였으므로 그만큼 개성적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동국진경과 풍속화, 동국진체와 사경시(寫景詩) 등은 모두 이러한 사실주의와 개성주의의 문예, 문화 이념을 바탕으로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등 사인화가(士人畵家)들과 그 주변 지식인들의 그림과 문예활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봉학, 조선후기 풍속화 변천의 사회, 사상적 배경, 최완수외 지음, 진경시대 2, 돌베개, 2003, 220~221쪽)
진경 산수화
조선의 회화사를 개략적으로 보면, 선초에서 중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절파풍(북종화풍, 원체화풍)의 화풍과 중기 이후의 오파풍(남종화풍)의 관념산수가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겸재 이전에도 우리의 산하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화가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조선의 산하를 그리되 그 기법이나 분위기는 중국식이었던 것이다. 겸재에 앞서 창강 조속이 진경산수화의 단초를 열었다고 하나 미흡하였다고 봄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정선에 이르러서 비로소 우리의 산하를 독창적 기법으로 그렸다고 본다.
그는 중국의 북종화법의 선묘법과 남종화법의 묵법을 조화시켜 중국과는 다른 우리의 산하를 그려내었다. 이른바 겸재준법(謙齋皴法)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화강암봉을 수직준법인 난시준법(亂柴皴法 도끼로 땔감을 내려 찍는 것과 같이 그리는 정선 특유의 준법) 혹은 상악준법(霜鍔法 서릿발과 같이 날카로운 수의 필선으로 표현한 준법)을 사용하여 길고 날카롭게 필선을 그어내려 골산특유의 질감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토산들은 주로 남방계열의 습윤하고 부드러운 표현법인 미가운산법(米家雲山法)의 미점준(米點皴)을 주로 사용하여 노년기에 이른 조선 산 들의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표현하여 우리정서에 훨씬 다가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