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동아시아사] 덩샤오핑 시대 : 탈(脫)마오쩌둥화와 현대화 (1977~1985)
- 최초 등록일
- 2012.01.06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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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동아시아사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레포트입니다.
사료와 책에 근거해서 열심히 쓴 레포트입니다!
좋은 성적 받았어요!! ^^
많은 이용 바랍니다~
목차
1. 덩샤오핑의 복귀
1) 화궈펑의 한계
2) 과도기 정치 노선의 모호성
2. 덩샤오핑의 전략 : 갈지자형 전략
3. 덩샤오핑의 업적
1) 정치적 측면
(1) 전체주의 정권에서 권위주의 정권으로의 변화
(2) 자유화
2) 경제적 측면 : 경제현대화
(1) 조정전략과 농촌 탈집단화의 성공
(2) 책임제와 농가 경작으로의 회귀
(3) 개혁정책: 3중전회(1984)와 공업 발전의 재개(1984~1985)
- 가격의 자유화
- 공업의 급성장 (1984-1985)
- 개방정책
본문내용
< 덩샤오핑 시대 : 탈(脫)마오쩌둥화와 현대화 (1977~1985) >
1. 덩샤오핑의 복귀
1) 화궈펑의 한계
마오쩌둥이 죽고 사인방을 제거하고 당원 주석이 된 화궈펑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화궈펑과 그의 가장 직접적인 동맹자들(왕둥싱, 우더, 천시리엔, 리더성)은 모두 문화대혁명의 덕을 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가장 직접적인 정치적 관심은 계속해서 문혁을 찬양하는 것이었고, 문화대혁명의 지나침과 그것이 불러온 불행한 결과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문화대혁명으로부터 배출된 젊은 간부 세대의 지지로부터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화궈펑의 동맹자들 가운데 쉬스유(광둥지역 사령관), 웨이궈칭 장군(정치위원) 등은 마오쩌둥주의의 고수와 제한적인 숙청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덩샤오핑 덕분에 복권된 지도자들과 함께 그들이 지지하던 덩샤오핑에 관한 사안을 재론하고 새로운 실용주의 노선의 채택하였다. 덩샤오핑은 결국 두 번째 복귀 1977년 7월 덩샤오핑의 두 번째 복귀를 공식화하는 동시에 당의 목표를 4대현대화로 채택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