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원적인간-우리는 과연 자본이 쳐 놓은 매트릭스를 비껴갈 수 있을까
- 최초 등록일
- 2012.01.16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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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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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비판이 마비된 사회에서 희망이 있는가?
2. 인간은 해방될 수 있을까?
3. 그럼 세계화시대의 독재는 필연이고 인간은 해방이 불능한 것인가?
본문내용
1. 비판이 마비된 사회에서 희망이 있는가?
일차원적 사유(one-dimensional thought)는 정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대량 정보를 조달하는 그들 어용상인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장된다 (p.34) 고 말한다. 한마디로 대형권력에 의해 우리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일종의 ‘조작’내지 그들이 의도한 바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느꼈다. 일례로 우리사회의 대부분 언론을 책임지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빅3 메이저 언론매체들의 여론형성능력은 정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휘두르는 ‘권력’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킹메이커(king maker)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중이 조작되기 쉽고 비판성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언론플레이에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진문명이라 자부하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산업문명의 안락하고 자동화된 순탄한 삶을 그럭저럭 살아가면서 비판해야할 것들에 대한 순수비판능력이 없어도 그럭저럭 세상은 굴러가기 때문에 비판의 기능은 완전 마비된 것은 아닐까? 마르쿠제는 이러한 형태를 ‘새로운 형태의 통제’라고 불렀다. 직접적인 통제는 가하지 않지만 스스로 사유하고 생각할 수 있는 필요성을 못느끼게 만들면서 통제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자발적인 통제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단자화된 개인의 무정부주의가 전체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역설이면서 동시에 필연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실제 이름인 시장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의 한 형태라는 것을 간파한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였다. 히틀러의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 온 그들이 미국 자본주의에서 직관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