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이정기 절도사 왕국
- 최초 등록일
- 2012.02.12
- 최종 저작일
-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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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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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의 절도사 체제와 고구려인 이정기 절도사
1. 절도사의 등장
사직(使職)의 등장
당대 중기로부터 출현한 사직은 당제국은 물론 이후의 중국사 전개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사직에 대한 『통전(通典)』의 기록을 보면, “안찰(按察)?채방(採訪) 등의 사(使)는 주현(州縣)을 치리(治理)하고, 절도(節度)?단련(團練) 등의 사는 군사를 감독하였으며, 조용(租庸)?전운(轉運)?염철(鹽鐵)?청묘(靑苗)?영전(營田) 등의 사는 재화(財貨)를 담당하였고 그 나머지 세무(細務)는 일에 따라 사를 두었으니 그 수는 가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사직을 정치?군사?재정 등의 분야로 대별하고 있다. 따라서 사직은 조정 내외에서 정치, 경제, 군사 등의 분야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에서도 외임직(外任職)으로 절도사(節度使), 관찰사(觀察使), 방어사(防禦使), 경략사(經略使) 등은 당나라의 후기 사회를 이끌었으며, 특히 절도사는 약 200년 동안 절도사 할거 및 정권체제를 구축하면서 당나라의 문벌귀족체제를 붕괴시키고 당송간의 모든 분야의 변화를 야기 시켰다.
절도사의 등장과 그 변모
절도사는 당나라 초기에 군사?민사를 통할하는 지방장관으로 본래는 도독(都督)?자사(刺史)에 속하여 자사의 명의로는 민정(民政)을, 도독의 명의로는 군사(軍事)를 관할하였다. 고종(高宗)이후부터 도독 중에서 대사지절자(帶使持節者)에게 ‘절도사’로 명명하였으며, 예종(睿宗) 경운(景雲)2년(711)에 양주(凉州)도독 하발연사(賀拔延嗣)를 하서(河西)절도사에 충당하면서 절도사는 관명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허명에 지나지 않던 절도사는 현종(玄宗) 천보초(天寶初)에 안서(安西)?북정(北庭)?하서(河西)?삭방(朔方)?하동(河東)?범양(范陽)?평노(平盧)?농우(?右)?검남(劍南)節度使,영남오부경략사(嶺南五府經略使)등 10절도?경략사의 설치로 그 입지가 실권화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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