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史學)의 틀로 살펴 본 괘릉(掛陵)이야기(10,7,12)
- 최초 등록일
- 2012.02.17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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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이번 한국 불교 미술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미술품들이 제각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는 동해 용왕과 의상대사가 표현된 ‘수월관음도’처럼 작품의 소재에 이야기가 반영된 경우도 있었고, 혹은 백제 장인 아비지와 황룡사 9층 목탑의 경우처럼 그 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탓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따라 국사학과에 들어온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괘릉을 위시한 능묘의 조각이었다. 처음 이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불교미술이라는 커리큘럼 안에서 능묘조각을 다룬 다는 것이 조금 이질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점차 조형물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 신라 능묘 조각의 완성이라고 여겨지는 괘릉은 당대의 여러 가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어, 사학도로서의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따라서 나는 괘릉을 이번 기말 보고서의 주제로 정하고, 이를 단순히 미학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해보고자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보고서를 통해 내가 논의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로 ‘무덤의 주인, 즉 피장자가 누구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괘릉은 원성왕릉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이후의 논의에서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사적(史的) 해석을 시도해 볼 전망이다. 두 번째로 무인상의 원류에 대한 여러 논의들을 정리해봄으로써 당시 신라 사회의 국제성 · 개방성을 조망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강인구, 『한반도의 고분』, 대우학술총서, 2000
강석경, 『능으로 가는 길』, 창작과 비평사, 2000
김원용, 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2003
김환대, 『(경주지역 왕릉 현장 기행) 신라왕릉』, 한국학술정보, 2007
일연,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