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서당과 우리들(고려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2.02.25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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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서당과 우리들(고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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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서당과 우리들(고려를 중심으로)>
왕위쟁탈전(王位爭奪戰)의 격심한 전개, 골품제에 대한 비판, 선종(禪宗)에 기울어지는 사상적 동향과 지방 세력과 호족의 등장은 신라말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으로, 모순을 극복하고 당대의 시대적 성격을 흡수하면서 고려는 출발하였다.
고려사회의 정신적 기반(精神的 基盤)은 불교였다. 불교는 더욱 발달하여 우리 역사상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리하여 의천(義川), 지눌(地訥)과 같은 고승이 나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대왕의 강력한 불교 정책의 수행 특히 사찰(寺刹)의 토지, 노비 지급, 승과의 설치, 승려의 정치 참여와 면역, 면세 등 지나친 불교의 우대는 불교의 속화(俗化)를 촉진시켰으며, 사원경제(寺院經濟)의 문란은 결국 고려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과 유학이 강력한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유학은 정치 수단으로서 또는 봉건적 왕권 강화의 이념으로 강조되어 불교이면(佛敎裏面)에서 면밀히 추진되고 있었다.
고려에서는 치국(治國)의 도(道)로서 유교(儒敎), 수신(修身)의 도(道)로서 불교(佛敎)를 숭상하였기 때문에 양자는 병행하여 발달하였고, 고려 문화의 2대 지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유(儒),불(佛)은 서로 양립의 영역을 이탈하지 않고 사상적 영향을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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