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명장 김유신
- 최초 등록일
- 2012.02.28
- 최종 저작일
- 2012.02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잘 활용하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김유신은 서울(慶州)사람이었다. 그의 12대조 수로는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후한 전무 18년 임인에 수로가 귀봉이란 산에 올라서 가락의 아홉 마을을 바라보고 드디어 그곳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가야라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으로 개칭하였다. 그 자손이 계승하여 9대손 구해 혹은 구차휴라고 하는 이에까지 이르렀는데 이가 유신에게 증조벌로 된다. 신라 사람들이 자칭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라 하여 김으로 성을 삼았고 유신의 비문에도《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직계》라 하였으니 남가야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일한 성씨이다.
김유신의 가계를 보면 증조부는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투항한 금관가야의 구해왕이며, 할아버지는 무력(武力), 아버지는 서현(舒玄)이다. 무력은 신주방면(新州)(廣州)도(道) 행군총관(行軍總管)이 되어 554년(진흥왕 15)에 백제(百濟)의 성왕(聖王)이 관산성(管山城)(沃川)을 공격하여 왔을 때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왕과 그 장수 네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의 머리를 베인 일이 있었으며 아버지는 서현이니 벼슬이 소판(蘇判)1), 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 안무대량주제군사(安撫大粱州諸軍事)2)에 이르렀었다. 유신의 비문에 의하면《아버지는 소판 김소연》이라 하였으니 혹시 서현의 고친 이름이오 소연3)은 그의 자인지도 알 수 없고 의심스럽기 때문에 두 가지를 그대로 적어둔다. 신라에서 금관가야 왕족의 후예들은 신라왕족의 김씨(金氏)와 구별하여 신김씨(新金氏)라 칭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만명부인(萬明夫人)이고 어머니의 증조부는 지증왕,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 아버지는 숙흘종(肅訖宗)이다. 숙흘종은 만명을 감금하면서까지 서현과의 혼인을 반대한 바 있다. 그것은 신라에 투항한 가야왕족이 당시에 비록 진골귀족(眞骨貴族)으로는 편입되어 있었지만, 왕족출신과 통혼할 만한 대귀족은 되지 못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北譯三國史記(下), 지은이:김부식, 옮긴이:사회과학원 고전연구실, 펴낸이:임성렬, 도선출판 신서원.
「신라사 속의 가야인들」『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혜안출판사, 2001.
모연호외 2인편저, 『화랑도와 화랑열전』학문사, 1985. 2
미왕의 문명 7백년 가야사 1. 수로왕에서 울광태자까지, 김태식 지음, 푸른역사, 2002.
삼국사기(하), 김부식 저 ; 이병도 역주, 을유문화사, 1983.
김유신전, 김진영, 안영훈 譯註,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5.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김태식 지음, 김양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