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와 신분사회
- 최초 등록일
- 2012.03.05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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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와 신분사회
목차
조선시대 신분사회
(1) 조선의 신분제
1.양천제도와 반상제도
2.양반
3.중인과 서얼
4.상민
5.천민
(2)사회 정책과 사회 시설
1.사회 정책
2.사회 제도
3.법률 제도
(3)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
1.배경
2.신분제의 동요
3.중간 계층의 성장
4.노비층의 신분상 변화
(4) 결론
(5)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시대 신분사회
(1) 조선의 신분제
조선왕조의 신분제는 신분직역제로 함축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남자는 원칙적으로 신분적 지위에 맞는 직역이 각 개인에게 주어지고, 이에 따른 권리ㆍ의무상의 차등이 법제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분적 지위는 직역의 여하에 따라 파악할 수 있었다. 직역은 신분을 판정하는 유력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장적에 기재된 직역을 통해서 조선의 신분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1.양천제도와 반상제도
조선은 사회 신분을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 제도를 법제화하였다. 양인은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자유인으로서 조세, 국역 등의 의무를 지녔다. 천민은 비자유인으로서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천역을 담당하였다.
양천 제도는 갑오개혁(1894) 이전까지 조선사회를 지탱해온 기본적인 신분제도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천제의 원칙에만 입각하여 운영되지는 않았다. 관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던 양반은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의 신분으로 굳어져 갔고, 양반 관료들을 보좌하던 중인도 신분층으로 정착되어 갔다. 그리하여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인 간의 차별을 두는 반상제도가 일반화되고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제도가 점차 정착되었다.
2.양반
①양반의 의미
양반은 본래 문반과 무반을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었다. 그러나 양반 관료체제가 점차 정비되면서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가문까지도 양반으로 부르게 되었다.
②양반 사대부의 기득권 유지
일단 지배층이 된 양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지배층이 더 이상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이들은 문무 양반의 관직을 받은 자들만 사족으로 인정하였다. 현직 향리층을 비롯하여 중앙 관청의 서리나 기술관, 군교, 역리들은 하급 지배 신분인 중인으로 격하시켰다. 사족과 이서층(서리층)이 분화하여 양반과 중인 신분으로 고정된 것이다. 또한 양반들은 첩에서 난 소생들을 서얼이라 하여 차별하였고, 정부에서
참고 자료
조선의 신분제-작성자 burynai
이경찬의 한국사교실(http://leekcp.new21.org/b%20kh/a%20kb/7c/f.htm)
hisphilo의 고등학교 역사
(http://blog.naver.com/hisphilo?Redirect=Log&logNo=100048568625)
옛터와 역사지기(http://corea1.hihome.com/)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작성자 고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