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일제강점기 시대의 사학자였던 이병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식민사학자, 실증주의 사학자로 갈리고 있는데, 이를 여러가지 사료 등을 근거로 저 자신의 의견을 곁들여 재조명해 보았습니다. 참고문헌 다 달려있습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이병도의 생애와 그의 학문 연구에 대하여
1) 사학입문배경과 수학과정
2) 조선사편수회와 그의 활동
3) 진단학회의 창립과 성격, 연구대상
4) 이병도의 해방 이후의 행적
3. 이병도의 역사서술과 역사관
1) 이병도사학의 사관적 특징 - 실증주의
2) 《한국고대사연구》를 식민주의사학으로 간주하는 시각에 대하여
3) 이병도사학의 한계성
4. 마치며
본문내용
이병도, 그는 실증주의사학자인가 식민주의사학자인가
1. 들어가며
지난 2009년 11월 8일,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 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된 지 60년 만에, 비로소 친일인물들의 행적과 경력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친일인명사전』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 끝에 출간되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고서도, 과거 청산보다는 지금 당면한 문제 해결이 더욱 중요하다는 구실들로 무기한정 유보되어왔던 친일파 단죄의 숙원을, 강제병합 100주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마침내 일단락 낸 것이다. 역사적으로 돌이켜 봤을 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이미 제헌국회가 반민특위법을 통해 친일분자를 청산한 지가 61년이 지났는데 어찌 이 땅에는 아직도 친일청산의 망령이 돌아다니는가’, ‘좌익들이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조직해 친일분자 청산을 거들먹거리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공작이다’는 둥 기득권층의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기득권층들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깨끗하게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단죄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심각한데, 그것은 식민지 시대에도 지배세력으로서의 권세를 누렸던 세력들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했고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며, 이로 인한 문제는 정계 등지뿐만 아니라 사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식민통치기를 기점으로 활동한 사학자들이 해방 이후까지 사학계의 주류로서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학 연구는 그들의 영향을 크든 작든 받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작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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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백과사전 - http://100.naver.com
민족문제연구소 - http://www.minjok.or.kr
진단학회 - http://chin.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