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교육제도와 관료
- 최초 등록일
- 2012.04.09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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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의 교육제도와 관료발표를 시작하기 앞서 조선시대에는 각자의 신분에 따라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교육에 차이점이 있었으며 그들이 장차 얻을 관료직에한다. 과거제도에 가문과 지방의 차별은 없으나, 관직과 분관(分館)등의 급제자 진출에 문벌과 지방의 차별이 반영되었다.1. 서울 양반: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이나 문한을 담당하는 홍문관 등 이른바 청요직으로 이곳의 관원이 된 사람은 재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순탄하였다. 무과의 경우는 왕을 호종 하는 선전관에 소속되었다.2. 평안도,함경도 등의 서북 사람
목차
없음
본문내용
2)입학방법
성균관의 입학 자격은 생원, 진사를 원칙으로 하고 향시, 한성시에서 1, 2등으로 합격된 자, 참상, 참외 등의 현직 관리 및 음문자제 등으로 제한하였다. 성균관의 정원은 생원, 진사 각 100명씩 모두 200명이었다. 생원과 진사는 일종의 과거시험을 의미했다. 생원시와 진사시라 불린 이 일종의 예비 과거시험은 소과 라 불리었으며, 나라에서 치르는 정식과거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위 등수 안에 들더라도 ‘합격’이라 칭하지 않고 ‘입격’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차등을 두었다. 소과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만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소과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합급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지만, 합격자중 대부분은 본 시험인 문과 시험에 응시하거나, 성균관에 진학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3)교육내용
조선사회는 유교적 가치와 이념을 국가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았기 때문에 성균관의 가르침과 배움의 내용은 유교적인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교육내용은 크게 유교의 기본 사상을 담고 있었으며 동양 고전이라고 불리는 ‘경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역사서’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송나라 때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하여 집대성된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경서 중, 사서(四書; 論語, 孟子, 大學, 中庸)와 오경(五經; 詩經, 書經, 周易, 禮記, 春秋)이 교육내용의 핵심이었다. 역사서로는 『사기』, 『한서』, 『후한서』등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강독은 공동 학습으로 명륜당에 전체 학생들이 모여 경서의 내용에 대한 교관의 강의, 상호 토론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개별적으로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였다. 단순히 암송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내용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정도까지 요구되었다. 제술은 시(詩)·부(賦)·표(表)·책(策)·의(疑)·의(義)·송(頌)·명(銘)·잠(箴)·기(記)의 다양한 형식의 문장을 작성하는 것을 배웠다. 조선시대에는 경서를 중시하고 강독을 강조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다양한 형식의 문장을 뛰어나게 작성하는 제술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습자는 붓글씨를 연습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