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골방
- 최초 등록일
- 2012.05.09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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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응골방에 대한 조사
목차
1. 저자와 생애(생몰년, 본관, 자, 호, 부모, 과거 및 벼슬, 주요 저술)
2. 책의 서지
3. 책의 내용
4. 책에 대한 연구성과물
5. 국어학적 연구성과
본문내용
1. 저자와 생애(생몰년, 본관, 자, 호, 부모, 과거 및 벼슬, 주요 저술)
이조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1269년(원종 10)에 태어나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죽었다.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시호 문열(文烈)이며, 본관은 성주(星州)로 농서군공(?西郡公) 장경(長庚)의 아들이다.
1294년(충렬왕 20) 향공진사(鄕貢進士)로 문과에 급제하여 안남서기(安南書記)에 보직되고,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비서랑(秘書郎) 등을 지냈다.
1306년 비서승으로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을 때 왕유소(王惟紹)·송방영(宋邦英) 등이 충선왕을 모함하여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 전(瑞興侯琠)으로 하여금 충렬왕의 후계를 삼으려 획책하다가 충선왕의 세력이 커지자 처벌된 일이 있었다. 이 때 어느 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단지 충렬왕을 보필하고 있었으나 그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그 뒤 귀양에서 풀려나와 13년간 고향에서 은거하면서 한번도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지 않았다.당시 충숙왕은 5년간이나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양왕 고(瀋陽王暠)가 왕위 찬탈을 도모하자 홀로 원나라에 들어가서 중서성(中書省)에 그 부당함을 상소하여 이러한 음모를 분쇄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왕이 귀국하자 감찰장령으로 발탁되고, 전리총랑(典理摠郎)으로 관동지방을 안무(按撫)하였다.
1327년 충숙왕이 원도(元都)에 있을 때 왕을 도운 공로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서 이등공신이 되었으며, 이어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하였다. 이 때 충숙왕은 심왕당(瀋王黨)의 끊임없는 모략으로 왕위를 심왕에게 선양(禪讓)하려 하였으나 한종유(韓宗愈) 등과 함께 극력 반대하여 이를 저지시켰다.
1330년 충혜왕이 즉위하자 장령이 되었고, 그 뒤 여러 번 충혜왕을 따라 원나라에 내왕하였다. 1339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그 이듬해 정당문학에 승진하였고,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