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소식선교회 태동
- 최초 등록일
- 2012.05.12
- 최종 저작일
-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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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쁜소식선교회를 주축으로 하는 모든 활동은 성경 속의 복음을 제대로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성경세미나와 신앙 캠프가 국내외 대도시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단행본 출간과 신문발행, 방송과 인터넷 등의 미디어 선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신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목회자 양성에 주력해온 선교회는 설립40년 만에 국내 180개 교회, 해외80개국 156개 교회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기쁜소식선교회는 디엘 무디 및 허드슨 테일러와 동역했고, ‘학생 복음 운동의 선구자’로 유명한 챨스 스터드가 세운 웩(WEC) 선교회에서 1956년 처음으로 한국에 파송하여 1975년까지 한국에서 선교를 한 케이스 글라스(Kays Glass, 한국명 길기수) 선교사를 통해 태동되었다. (‘복음은 철의 장막을 뚫고’ 라는 책의 저자이자 공산화된 동유럽에 생명의 걸고 선교하여 ‘복음의 밀수꾼’으로 유명한 브라더 앤드류가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의 친구로 웩 선교회에서 함께 훈련을 받았다.)
경북 선산에서 선교를 한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는, 당시 선산장로교회의 중등부 학생이었던 박옥수 목사가 참된 죄 사함과 거듭남을 체험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으며, 박옥수 목사는 거듭난 후 케이스 글라스 선교사를 포함하여 정통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학교에 1기생으로 훈련을 받은 후 선교사들이 모두 귀국한 1976년부터는 그 선교학교를 위임받아 기쁜소식선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배경을 좀 더 설명하면, 챨스 스터드의 후계자이자 2대 웩 선교회 회장인 놀만 그랍(Norman P. Grubb)은 1954년 8월에 청소년 부흥사로 유명한 제이 짤비스 박사의 권유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대구 주암산 기도원에서 가진 부흥회에 참석했다. 그때 놀만 그랍은 처음으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당시 집회에 모인 1,000여명의 한국 교인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인 거듭남이나 구원의 믿음에는 관심이 없이, 인간의 열심과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이는 한국 교회가 정통 복음주의가 아닌, 현대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기쁜소식선교회 | good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