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역사와 문화재
- 최초 등록일
- 2012.06.1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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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사, 동양 문화사에서 충주에 관한 역사 자료로 레포트올린 자료입니다!
물론 자료 점수는 A플러스 나왔습니다!!
목차
1. 충주의 연혁
2. 충주의 문화유산
3. 충주의 문화
4. 충주의 인물
5. 조사를 마치고...
※ 참고자료
본문내용
1. 충주의 연혁 [忠州, Chungju]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충청북도는 삼국에 접하고 있었던 땅으로 청주, 문의, 화인지방은 충남을 근거로 백제에 속하고, 옥천, 영동, 황간, 청산, 보은 등 5개 군은 신라가 점령하고, 진천, 청안, 음성, 괴산, 충주, 연풍, 단양, 청풍, 제천, 영춘 등의 10개 군은 고구려의 영토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경주, 안동, 풍기를 지나 진격해온 가등세력은 죽령을 넘고, 상주를 경유하여 돌진해 온 소서의 군대는 조령을 넘어 충북에 들어와 충주에서 결합함으로써 조선의 장수인 신립은 고전을 하였다고 한다.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맹렬히 싸웠던 유적은 충주읍 서쪽 10리 달천강변의 탄금대 아래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국익을 위하여 남쪽 왜구의 침입에 방비를 튼튼히 하고자 충북의 충주와 청주에 도호부 목사 겸 방어사를 배치한 일도 있었다. 그 후 조선개국 503년에 이르러 한국을 23부로 나누고 관찰사를 임명하여 이를 관할토록 하였다가 이듬해에 또다시 23부제를 폐지하여 13개 도로 나누었다. 이때 충주를 충청북도의 수부로 하고 지금의 18개 군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6월 28일 칙령으로 충북도청의 소재지를 청주로 고치고 동년 6월 5일 도청 이전을 완료하였다. 여기에서 충주시의 역사적 명칭변화를 살펴보면 삼한시대에는 마한지역에 속하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원성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원경으로 불리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현재의 지명과 같은 명칭인 “충주(忠州)”로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