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의 로마 황제 등극부터 제국의 전성기 로마 역사 개요
- 최초 등록일
- 2012.06.11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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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우구스투스의 로마 황제 등극부터 제국의 전성기 로마 역사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제정 수립
2. 제국의 성장과 발전
본문내용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 지배권을 쥐고 로마의 첫 황제가 되었다. 이집트를 합병해 재정이 넉넉해졌으므로 그는 마음대로 재건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가 계획한 정치체제는 군사독재가 아니라 자신의 지휘가 보편적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 문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는 많은 군대를 해산하고 콘술을 정기적으로 뽑게 했다. 그는 자기가 콘술로 선출되자 사퇴하려고 했지만 원로원은 오히려 그의 사퇴를 거절하고 10년 동안의 히스파니아(스페인)․갈리아․시리아 통치를 위임했으며, 아우구스투스(Augustus:존엄한 사람)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군사력을 독점한 데 이어 콘술이 됨으로써 군사(軍事)와 민사(民事)를 모두 손에 넣었다. 그러나 콘술직을 계속 맡는 것은 원로원의 반발을 살 염려가 있어 그는 BC 23년 콘술직을 사퇴하고 호민관의 권한(tribunicia potestas)을 비롯해 원로원과 민회를 소집․주재할 권한도 얻었다. 호민관직은 전통적으로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반감을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임기가 1년이긴 하나 계속 중임할 수 있었다. 한편 그가 다스리는 속주와 군대 통수권도 법률적으로 뒷받침되었다. 원로원이 프로콘술의 임페리움을 그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이는 시한적이었지만 그 기간이 자동으로 갱신되었으며, 동시에 이탈리아와 로마 안에서도 유효했고 다른 어떤 임페리움보다 우월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지위를 확고하게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임페리움이었다. 따라서 그 뒤로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 시대에 가질 수 있었던 예외적 권력의 직책들(딕타토르, 종신 켄소르, 콘술)을 차지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는 명예로운 제의를 받아들여 콘술이 지닌 몇몇 권한을 획득하고(BC 19), 폰티펙스 막시무스가 되었으며(BC 12), 1년 중 8번째 달을 그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고(BC 2),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인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뒷날 황제를 가리키는 칭호가 되었으나, 그와 그의 뒤를 이은 4황제에게는 칭호가 아닌 이름이었다. 아우구스투스가 지닌 칭호 가운데 하나인 프린켑스(제1시민)는 비공식적인 것이었는데, 그가 만들어낸 통치체제는 이 이름을 따서 프린키파투스[元首政]라 부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