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정화
- 최초 등록일
- 2012.07.04
- 최종 저작일
-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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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화의 해외원정에 대한 레포트
목차
1. 인물 선정 이유
2. 명대의 환관, 정화
- 정화와 영락제
- 정화가 남으로 간 까닭은?
- 정화 원정의 성과
3. 1405년의 세계
- 아시아
- 유럽
4. 같은 행동, 다른 목적
- 정화와 콜럼버스
- 동양과 서양의 차이
5. 맺음말
6.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인물 선정 이유
보고서 주제의 인물을 ‘정화’라고 정한 것은 누구라도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 때문이다. 단지 한글의 음이 같아서 쉽게 떠오른 인물 정화(鄭和)(1371~1434). 그러나 그는 그리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중국의 유일무이한 대 항해가. 서양과 굳이 비교해, 중국의 콜럼버스라고 불리는 정화는 사실 콜럼버스보다 약 90년이나 먼저 바닷길에 오른 사람이다. 거기다가 그는 환관이다. 중국의 3대 환관 중 무인으로 올라와 있는 정화에 대해 단지 영락제 때에 활동한 환관이며 남해 원정을 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중략>
3. 1405년의 세계
아시아
한반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후 고려가 무너지고, 1392년에 조선이 들어서게 되었다. 새로 들어선 나라는 당연히 국내 안정을 위주로 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었고, 바깥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대처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되 명나라에 전혀 간섭받지 않았으며 자치권을 인정받는 어느 정도의 독립적 국가였다. 조선에서는 1400년까지 제1,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뒤숭숭했으며, 1400년 이후에 이방원이 등극하자 왕자의 난과 같은 일들은 한동안 종식되었다. 이때에 조선은 골칫거리인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그 근거지인 쓰시마 섬을 정벌하고 1433년에 4군을 설치하는 등 대내를 정비한 후 대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중략>
5. 맺음말
환관인 정화의 묘사엔 키가 무려 약 2.1m에 달한다는 구절이 있다. 기골이 장대하며 무인이었다는 묘사엔 사실 대부분이 인식하고 있는 환관의 이미지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다. 성인이 되어 환관이 된 것도 아니고, 10살 어린 나이에 환관이 되었다면 대충 일반적인 환관의 이미지였을 텐데 묘사에는 정상 남자보다 훨씬 더 크고 정상인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참고 자료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웅진
동양사개론, 신채식, 삼영사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이평래 옮김, 소나무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 박경희 엮, 일빛
신일본사, 이에나가 사부로 외, 강형중 역, 문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