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 운동
- 최초 등록일
- 2012.07.23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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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농민운동과 역사적의의 , 폐정개혁안 그리고 동학농민운동의 경제학적 평가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첫번째로 폐정개혁 12개조와 집강소가 무엇이며, 이러한 정치적 장치가 미친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2. 두 번째로는 동학농민운동의 경제사적인 평가에 대해서
3. 세번째로 동학 농민운동이 미친 역사적 의의와 세계사적 의의 그리고 현재 이루어지는 연구에 대해서
본문내용
1862년의 농민항쟁 이후 일제 식민지로 편입되기까지에는 수많은 민중운동이 전개 되었다. 이 시기 민중운동이 안고 있던 기본적인 과제는 1)중세체제를 일소하고 근대적인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일과,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고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하는 일이었다. 즉 반체제 근대화와 반제국주의 자주화의 과제가 주어져 있었다고 하겠다. 민중운동은 어느 다른 운동에 비하여 반체제 반제국주의적 과제를 선명하게 제시하였고, 스스로의 역량에 의하여 혁명적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농민전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고부민란을 시작으로 영동보은 전투까지 대규모의 전투를 벌이면서 조선뿐만 아니라 청과 일본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2)농민전쟁에서 주로 참여한 자는 지도자, 주도층, 참가자 등으로 구분하여 고찰이 가능 한데, 지도자와 주도층, 주도층과 참가층을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논의에 편차가 발생할 수는 있다. 먼저 지도자로서는 최고의 지도자 전봉준을 중심으로 서장옥, 손화중, 김개남 등을 들 수 있다. 3)전봉준의 경우, 그의 신분이 평민인지 몰락양반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가 동학의 조직을 이용하여 농민군의 혁명적 지도자로 등장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 략>
그리고 동학농민군의 타도 대상은 부패한 수령과 벼슬아치, 구실아치, 부정한 양반, 지주, 부호였다. 또 동학농민군이 관물의 늑탈 이외 토지문서와 노비문서를 탈취하거나 불태운 것은 구조적으로 모순이 있는 조선의 경제적, 계급적 평등을 구현하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은 본질적으로 농민 또는 상민과 계급적 이해를 같이 했던 세력이었다. 하지만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농민전쟁의 객관적 조건으로서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 농민전쟁이 아시아사 및 세계사에 남긴 영향과 의의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편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특수한 역사적 사건인 1894년 농민전쟁의 보편적 역사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 자료
오지영 [東學史]
이영효, [동학과 농민전쟁], (혜안, 2004년)
김용섭 [전봉준공처의 분석], [사학연구] 2, 1958
신용하, [갑오농민전쟁시기의 농민집강소의 설치], (한국학보 1985)
동학사상과 동학혁명, 이현희, (청아출판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