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청주곽씨
- 최초 등록일
- 2002.11.27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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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씨의 연혁에 대해
청주에 대해
청주 지방에 본관을 둔 성씨에 대해
곽씨의 유래에 대해
본문내용
성은 혈족관계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지만 , 고대로부터 사용해 온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는 시조 주몽이 건국하여 국호를 고구려라 한 까닭에 성을 고씨라 하고, 또 주몽은 그 신하인 재사에게 경씨, 무골에게 중실씨, 묵거에게 소실씨라는 성을 내렸다고 한다. 백제는 온조가 부여계통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씨라 했다고 한다. 또 신라에는 박, 석, 김 세 성의 전설이 있고, 제 3대 유리왕 때에 육부에 성을 내렸으니, 즉 양부에 이씨, 사양부에 최씨, 점양부에 손씨, 본피부에 정씨, 한지부에 배씨. 습비부에 설씨 등의 성을 주었다고 하며,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도 황금알에서 나와 김씨로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가 고대부족사회 때부터 성을 사용한 것처럼 기록은 되어 있으나 그것은 모두 중국문화를 수입한 뒤에 지어낸 데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중국과 왕래한 이후의 일로써 고구려는 건국 초기인 1세기 무렵부터, 백제는 4세기 무렵인 근초고왕 때부터, 신라는 6세기 무렵인 진흥왕 때부터 대체로 성을 갖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성을 갖는 경우에 대개 왕실의 성을 따라 쓰기 마련이다. 즉 고구려는 고씨, 백제는 여씨, 신라는 김씨를 쓴 사람이 가장 많았고 그 밖의 성을 가진 수효는 얼마되지 않았다.
또 고려 태조 왕건을 추대한 개국공신 홍유, 배현경, 신승겸등도 처음부터 성이 있지는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