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종의 왕권강화
- 최초 등록일
- 2012.09.07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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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광종이 즉위하여 실시한 초기의 개혁정치와 왕권의 강화를 위해 실시한 정책과 그 주도세력에 대하여 정먼저 살펴보고, 이에 따른 개혁의 부작용에 대해서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초기의 개혁정치
3. 왕권강화책의 실시와 그 주도세력
1) 왕권강화책 실시
2) 왕권강화의 주도세력
4. 개혁의 부작용과 불교의 혹신
5. 맺음말
※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려초기 정치는 태조가 측근무장에 의해 추대되어 고려를 개창한 이래, 여러 지방세력들을 회유하는 가운데, 왕조의 기틀을 세워 나가며 전개되었다. 후삼국 통일 후, 태조는 어느정도 지방세력을 억압하면서 중앙집권 정책을 진행하였다. 태조 사후 즉위한 혜종은 박술희와 왕규를 세력기반으로 삼아 즉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규의 난으로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훙하였다. 신명왕후 유시의 소생인 요는 서경세력인 왕식렴의 도움으로 정종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협소한 정치기반과 지나친 불사로 인한 지지세력의 감소 등으로 재위기간이 길지 못했다. 정종과 동복제인 소는 정종의 내선(內禪)을 받아 광종으로 즉위하였다.
이에 따라 왕위에 즉위한 광종(光宗, 925~975)은 고려 제4대 왕(재위 949∼975)이며, 태조의 넷째 아들이고, 정종의 친동생이다. 휘는 소(昭), 자는 일화(日華), 정식 시호는 광종홍도선열평세숙헌의효강혜대성대왕(光宗弘道宣烈平世肅憲懿孝康惠大成大王)이다. 왕위에 오른 광종은 독자적인 세력기반을 쌓아 왕권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
광종은 요(정종)와 같이 왕규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지만, 서경세력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정종대에 득세했던 서경세력이 많은 화를 당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렇게 왕위에 즉위한 광종은 26년간 집권하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재위 기간 동안 그의 치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성격상 세 시기로 구분 할 수 있다. 첫째는 즉위(949) 후부터 광종 7년(956)까지의 시기이고 둘째는 그 이후부터 광종 11년(975)까지이며, 셋째 시기는 광종 11년(975)부터 말년인 광종 26년(975)까지이다.
참고 자료
尹晟栽, <고려 광종대 개혁정치와 정치세력>《淑明女子大學校 大學院 韓國史學科》2000.
김창현,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3.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웅진닷컴 2004.
김갑동, 《고려전기 정치사》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