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고전 문학] 박지원의 문학에 나타난 풍자 인물
- 최초 등록일
- 2002.11.28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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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가 직접 발표했던 발표분입니다. 상당히 점수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목차
박지원의 문학관
사실주의
독창성,자주성
풍자성, 골계성
연암 소설의 형태*
박지원의 풍자 소설의 간단한 내용
연암의 사상
맺음말
본문내용
연암 박지원은 조선조 후기를 대표하는 문학인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은 문학이 과거를 통해서 입신하는데 필요한 사장(詞章)도 아니며, 산림으로 물러나서 심성을 기르는 데 필요한 재도지기(載道之器)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에게 문학은 현실을 제대로 펴지 못한 위치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선비가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런한 자각을 바탕으로 실학을 문학을 통해 실천했다.
글로써 놀이를 일삼는다. 以文爲戱는 표현은, 낙척하여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사회를 비웃고 풍자하는 자조와 개선의 방법이다. 사회를 향한 일종의 매서운 비판 정신이다. 벌레를 새기고 갈대를 그린다. 彫蟲畵蘆는 사소한 기술은 곧 현실의 사실적 표현이면서 자신의 행위를 비하하여 표현한 것은 일종의 반어적 기술이다. 특히 연암은 풍자와 골계, 반어의 수단으로 비유를 자주 이용했다. 그의 적절한 비유와 속어적 표현의 묘를 통하여 연암은 경직된 유가사회의 非理들을 골계와 풍자의 열기로 용해시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문학의 이념을 그 위에 한껏 꽃피웠다.
연암은 조선 후기와 시대를 함께 하는 문인으로서 사상과 문학성이 골고루 갖추어진 문인이었으며 실학을 문학에 참여시켰던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다만 박지원의 생애와 작품과 그의 사상을 공부하며 아쉬웠던 것은 청조의 문물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고, 여기에 바탕을 둔 현실 인식이 현실에서의 변화보다는 그가 처한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 의하여 문학의 이론과 소설 작품을 통해서만 형상화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작품을 한문으로 남겨 그의 실천적이고, 실학적인 작품들을 일반 서민 계층의 사람들과 같이 향유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