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행정구역 변화 및 동이름의 유래
- 최초 등록일
- 2012.10.17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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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제 : 부산의 지명의 유래와 그에 대한 역사.
목차
없음
본문내용
∴『부산』 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자!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부산(富山)이란 명칭이 기록에 처음보인 것은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강구사 이하생(李夏生)을 대마도에 보낼 때 백미 천석을 부산포에서 반출했다는 기록에서 보인다. 또『세종실록지리지』에는 "東萊富山浦(동래부산포)"라 했고, 신숙주의『해동제국기』에도 "東萊之富山浦(동래지부산포)"라 했으며, 또 같은 책「三浦倭館圖」에도 "동래현부산포(東萊縣富山浦)"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때의 부산포는 `부자 富`자를 사용하고 있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되고 그 후 여러 번 증보된『동국여지승람(1486)』산천조에 보면, "부산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근처)에 있으며 산이 가마 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불렀는데 그 밑이 곧 부산이다. 항거왜호가 있는데 북쪽 현에서 거리가 21리이다."라고 하여 산 모양이 가마 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는 부산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그 후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부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동래부지(1740)』산천조에도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 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불렀는데 밑에 부산·개운포 양진이 있고 옛날 항거왜호(恒居倭戶)가 있었다."라고 했고, 『동래부읍지(1832)』에도 같은 내용으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동국여지승람』편찬 이전에는 부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중략>
애기소
북구 화명동 대천천의 종류 산성골에 있는 작은 폭포로 경관이 빼어난 경승지이다. 애기소(沼)란 옛날 젊은 아낙네가 애를 데리고 이곳에 왔다가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어 애기가 물에 빠져 죽는지도 몰랐다는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금실이 좋은 젊은 부부가 오랫동안 태기가 없어 걱정이 되었다. 부부는 천지신명께 백일기도를 올리기로 하고 계곡의 넓은 소(沼)가 있는 이곳에서 정성껏 빌고 빌었다. 백일째 되던 날 한 선녀가 나타나 하늘의 법도에 두 부부에게 아기가 없으나 선녀의 노력으로 점지해 주되 태어난 3년만에 하늘로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약속을 하면 얻을 수 있다고 하여 부부는 이를 약속을 하였다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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