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일제에 의한 경복궁 훼손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10.31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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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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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작하는글
2. 경복궁의 시련
▲ 첫번째 시련
▲ 왕실의 존엄을 다시 세우다.
▲ 다시 시작되는 시련.
3. 경복궁의 훼손.
▲ 광화문
▲ 강녕전과 교태전
▲ 그 외 건물터.
▲ 건청궁을 돌아보며.
▲ 신무문을 향하면서..
4. 답사를 마치고..
본문내용
1. 시작하는글.
경복궁은 태조 3년(1394년 10월)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공사를 시작하여 1395년 9월에 완공한 조선왕조의 법궁 이다. 태조 때 정도전은 중국의 ‘시경’<주아>의 한구절인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복이 있으리라”에서 경복(景福)을 따 경복궁이라 이름 지었다. 군자 만년에 큰 복이 있으라고 이름붙인 경복궁은 이후로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같이 한 경복궁을 둘러보면서 경복궁이 일본에 의해 겪은 시련을 조사한 것을 서술하고자 한다.
2. 경복궁의 시련
▲ 첫 번째 시련.
- 경복궁이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시련을 맞은 때는 임진왜란 때이다. 1592년 임진왜란 중에 화재에 의해 경복궁은 소실되었는데, 조선 왕조 실록 에도 화재 원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방화설이 더욱 압도적인데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선조가 왜군이 도성으로 쳐들어 온다는 급보에 놀라 신하들과 야밤에 장안을 빠져 피난을 가버리자 이제 장예원과 형조를 관노들이 불 지르고 이때 성난 백성들이 가세하였다는 것이 하나의 의견이고, 또 나머지는 왜군들이 경복궁을 접수하고 보니 임금이 이미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화풀이로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 이노근의 경복궁 기행열전 - 종로신문사
<중 략>
▲ 신무문을 향하면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향하는 길에 향원지 라는 연못이 있다. 중간에는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지금은 향원정에 진입하는 다리가 남쪽을 향하여 나있는데 예전의 북궐도를 보면 북쪽으로 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대에 복원하면서 남쪽으로 낸 것이라 하는데 원래는 건청궁 에서 나와 들어갈 수 있도록 건청궁 쪽으로 다리가 나 있었다. 이번에 가서 확인한 결과 건청궁 쪽에서 바라보면 건청궁 쪽으로 다리가 나 있었던 흔적이 있다. 축대의 흔적이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 이렇게 역사를 공부하고 답사를 하니 이런 것도 발견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신무문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신무문은 최근에 개방된 문으로 그 전에는 그쪽에 군부대가 있어서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었다. 신무문을 나가려고 바라보면 문 사이로 청와대가 보인다. 예전에는 청와대가 고려의 이궁자리였고, 경복궁의 후원이었다고 한다. 조선 왕들이 이 문을 드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신무문을 나가니 청와대를 경비하는 군인들이 엄숙하게 서 있다.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 자료
1. 이노근의 경복궁 기행열전 - 종로신문사
2, 마음으로 읽는 궁궐이야기 - 이비락- 윤돌 저
3. 우리 궁궐 이야기 - 청년사 - 홍순민
4. 임금님도 모르는 경복궁 이야기 - 인물과 사상사
5.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푸른역사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
6. 서울의 궁궐 - 조선일보사
7. KBS 역사스페셜 101회 - 21c 최대복원사업, 경복궁이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