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비의 삶
- 최초 등록일
- 2012.11.01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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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생활사 레포트로 `조선시대 왕비의 삶`을 정리한 것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간택과 혼례
1) 간택
1-1. 후궁 간택
2) 가례
(1) 택일
(2) 납채
(3) 납징
(4) 책비
(5) 명사봉영
(6) 동뢰
3. 왕비의 역할과 활동
1) 임신과 출산
2) 유교사회 여성의 대표로서의 역할
(1) 내명부 통솔
(2) 친잠례
3) 정치활동-대비의 수렴청정
4. 폐비
5. 왕비의 죽음과 그 이후
1) 임종과 장례준비
2) 시호 정하기
3) 왕릉조성
4) 국장
6. 느낀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예전부터 왕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있었지만, 왕비와 관련된 것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있다고 하더라도 장희빈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내용이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적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조선시대가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사회였기 때문에 왕비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있어봤자 `힘없는 여성`으로서 묘사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같은 경우라도 역동적인 군주의 이야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조선시대의 여성은 남자보다 하위개념으로서 약하고 덜 중시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왕실의 여성인 왕비는 어땠을까?` 나는 이런 호기심에서 이번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왕비의 삶을 통해 당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위를 누렸지만, 결국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던 왕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선 1장에서는 한 여성이 간택되고 가례를 치루며 왕실여성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2장에서는 왕비의 역할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특히 이 장에서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인 임신과 출산, 여성의 대표로서의 역할-내명부관리, 침잠례, 그리고 대비의 수렴청정을 다룰 것이다. 3장에서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폐비된 왕비들을 (간략히)살펴보고, 4장에서는 왕비의 죽음과 유교사회에서 치러진 장례절차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Ⅱ. 간택과 혼례(가례)
1. 간택(揀擇)
17세기 유학자인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의하면 왕비간택은 태종대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태종이 이적의 아들을 부마로 삼고 싶어 해 사람을 보냈으나 이적이 거절하자, 이에 태종이 분노하여 사대부의 자녀를 궁에 모아 친히 간택을 한 것이 훗날 국혼의 간택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택은 고려 때 원에게 처녀를 공물로 바쳤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명이 원하면 전국에 결혼금지령을 내리고 간택사를 지방에 보내 처녀를 간택했고, 왕이 직접 선발하여 명에 보냈다. 태종은 이를 본떠서 후궁을 찾았던 것이다. 간택은 세종 대에 형식화되었고, 국혼에서의 간택은 문종이 왕세자일 때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참고 자료
<도서>
-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 신명호, 돌베게, 2006
- 조선의 왕후, 변원림, 일지사, 2006
- 조선왕비 오백년사, 윤정란, 이가출판사, 2008
<논문>
- 조선 왕실의 가려진 반쪽의 역사, 왕비에 대하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