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권 침탈과 강제병합(러일 전쟁부터 한일 강제병합까지)
- 최초 등록일
- 2012.11.11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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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단순히 일본의 국권침탈과 강제병합에 대한 내용만을 서술한 것이 아닌, 교과서에 충실하여 각종 사료(사진, 문헌사료) 등을 통하여 사료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는 보고서 입니다.
보고서 만드실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러일 전쟁
2. 을사조약
3. 헤이그 특사 사건
4.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5. 한일 병합 조약
6. 참고자료
본문내용
러 일 전 쟁
러일전쟁은 당시 조선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조선 영내에서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이며, 이 사건의 결과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적이고 본격적으로 시작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전쟁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러일전쟁이란
1904∼1905년에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이다. 한국에 있어서 이 사건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은 서로 조선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북진하려는 일본간의 필수불가결한 무력적 만남이었다.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고종은 러일전쟁의 직전 조선의 중립화를 천명하는 글을 발표하여 전쟁에 조선이 휩쓸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하지만 일제에 의하여 무시당하고 전쟁이 시작된다. 다음은 러일 전쟁 직전 이탈리아 국왕에게 보낸 조선의 중립화 내용이 담긴 고종의 친서이다.
<중 략>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는 내용이다.
참고 자료
주진오 『중학 역사교과서 (하)』, 2012
이상찬 『을사조약과 병합조약은 성립하지 않았다』, 1988-1995
학원미디어 『헤이그로 간 특사』, 1995
서영희,『일제 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 러일전쟁에서 한일병합까지』 2012
연정은,『일본의 한국병합』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