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송논쟁
- 최초 등록일
- 2012.12.03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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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해예송과 갑인예송에 대해 알아보자
목차
1. 머리말
2. 효종(孝宗)의 종통(宗統)문제
3. 현종(顯宗)대의 예송(禮訟)
(1) 기해예송(己亥禮訟)
(2) 갑인예송(甲寅禮訟)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예송(禮訟)은 17세기 당시 성리학자였던 지식인의 사고방식과 사회사상, 정치사상 등과 밀접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왕실의 종통(宗統)문제, 즉 왕위계승의 정통성 문제는 조선 후기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효종(孝宗)의 왕위계승은 이후 두 차례의 치열한 예송을 가져올 만큼 종법(宗法)적 측면에서 큰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조선초기 태종(太宗), 세종(世宗), 세조(世祖), 예종(睿宗), 성종(成宗)의 왕위계승도 고전적 종법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중 략>
≪의례(儀禮)≫라는 고례(古禮)를 토론·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종법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어 있었다. 이는 현종과 숙종이 종법의 대원칙인 적장자 계승에 따라 왕세자의 자리를 거친 것과 『속대전(續大典)』과『대전통편(大典通編)』의 「예전(禮典)」에서 종통 계승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지고 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45)
그리고 논쟁을 이끌었던 성리학자들은 기해년 복제 문제가 왕실에만 국한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국가의 중요한 기틀로 파악했다. 또한 자신들이 이상이라 생각하는 예(禮)를 현실 속에서 실현해내는 것이 정치라 생각했기 때문에 예송이 치열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17세기 예송의 정치사적 의미에 대한 재해석 : 송시열과 윤휴를 중심으로 / 김상희
효종의 종통문제와 현종대의 예송 / 이경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반영된 조선 후기 『예송논쟁』/ 이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