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학사] 정통론(正統論)의 형성(形成)과 연원(淵源)
- 최초 등록일
- 2002.12.05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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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송대의 정통론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형성되었다. 이를 사학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 사가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통론은 사학사상(史學思想)을 둘러싼 논의를 거쳐 수정되었는데 이 수정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이로써 사가라면 누구나 사학사상을 받아들이는 데에 맹목적이 아니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점이야말로 중국사학사를 평가할 때 언급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일 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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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송대(宋代) 이전에는 실제의 정통(正統)에 대한 논쟁은 있었으나 정통 이론은 출현하지 않았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사학(史學)이 발달함으로써 정통관념에 대해서 정식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중국사학사(中國史學史)상에 있어서도 일대 변동이며 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송대(宋代) 사학이 사가(史家)의 주의를 끄는 주된 이유는 당시에 통감체(通鑑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등 각종의 사서(史書)의 체례(體例)가 동시에 나타나 이후 사학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사학을 더욱 발달케 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사가는 사학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정통론(正統論)은 한 사가의 역사적 지식에 관계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사가의 역사 해석과 그 시대적 배경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통에 대한 송대(宋代) 사대부(士大夫)의 논의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송(北宋)과 남송(南宋)의 정통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지는 않은데, 이는 사학사에 있어 매우 주의할 만한 문제이다. 대체로 말하면 북송의 정통론은 구양수(歐陽修)가 중심이었고 남송의 정통론은 주희(朱熹)가 중심이었는데, 양자간의 관점의 차이를 통해서 송대 사대부의 사학에 대한 태도와 주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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