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치세
- 최초 등록일
- 2012.12.06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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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종의 치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태종의 생애
1) 1차 왕자의 난
2) 2차 왕자의 난
3. 태종의 치세
4. 태종의 가족구조
5. 태종의 시대의 사건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새 왕조 창업기에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등에 의해서 견제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 그러나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나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그는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었다.
“이런들 어떠하니 저런들 어떠하니”, 하여가에 담긴 야망
고려의 마지막 기운이 느껴지던 어느 날 이방원과 정몽주가 술상을 앞에 놓고 자리하였다. 자신의 야망 실현에 걸림돌이 되었던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이방원은 먼저 시 한 수를 읊었다. 우리네 세상살이 중간 중간에 부딪치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깐 짬을 내어 감상해보기를 바란다.
< 중 략 >
3. 태종의 치세
4)태종은 탁월한 정치력과 결단력을 지닌 명군이었다. 정사를 논할 때 구태의연한 명분이나 인연, 과거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태조의 배향공신을 책정할 때 자신의 정적이며 역적으로 규정된 정도전과 남은을 선발하는 냉정함을 보였고, 세종을 위해 자신에게 항거하였던 황희를 추천해 중용하게 하였다. 그는 또 장인 민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그 주위에 수구파가 결집하자 처남들을 과감하게 제거하였으며 양위한 뒤에는 세종의 장인 심온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병권남용의 죄를 들어 전격적으로 처형하였다.
태종은 보위에 오르자 우선 선원록을 정비하여 비태조계를 왕위계승에서 제외하여 후계체제를 명확히 한 다음 왕권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태종원년 1400년 8월 현직 관리와 퇴직관리의 옷을 품계에 따라 달리 하는 등 신분과 관련된 복제 규정이 마련되었다. 그와 함께 장인, 공장, 상인, 하인등 평민과 천민의 복장을 엄하게 정한 다음 개경 거리에서 우마를 타지 못하게 하였다.
5)1402년 태종은 의정부의 건의로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이 임금에게 직소할 수 있는 신문고제도를 시행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의 본래 목적은 창업 초기 반대세력색출에 있었기에 실제로 백성들이 북을 두드려 국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불가능하였다. 이 제도는 양반들의 이권 다툼용으로 전략하면서 효용성을 잃고 후대에 폐지와 설치를 반복하다가 중종 때 완전 폐지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