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다문화 사례
- 최초 등록일
- 2012.12.09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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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다문화주의 상징 백제금동대향로
2. 고려 ‘내자불거’ 귀화책
3. 고구려 무용총 분벽화의 서역인
4. 신라 로마문화의 왕국
5. 인도에서 온 가야 왕비 허황옥
본문내용
다문화주의 상징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야말로 5가지 다문화를 내포한 다문화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다. 뚜껑의 꼭대기에 날개를 펴고 있는 봉황은 북방 유목민족 문화에서 유래된 신조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봉황 주위에는 다섯 명의 악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서역의 현악기 완함, 관악기인 쿠차의 피리와 북방 유목민의 배소, 타악기인 동남아시아의 항아리식 북, 한국의 거문고가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루며 동서남북의 화합과 조화를 뜻한다. 몸체에 표현된 불교이념의 연꽃 등 이 향로는 다원주의 문화의 융합성을 대표하고 있다.
고려 ‘내자불거’ 귀화책
특히 고려는 튼튼한 국력과 높은 문화적 자신감으로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내자불거의 귀화책을 실시했다. 귀화인을 호적에 편입시키고 상을 하사하며 관직을 제수하고 작위와 식읍을 내렸다. 주택과 전답, 미곡, 의복, 기물, 가축 등을 무상제공하고 안전을 위해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착시키는 등 포용과 우대의 선정을 베풀었다. 우리나라의 성씨 275개 가운데 귀화성이 130여개인데 그중 고려 때가 60개로 최다였다. 고려 초 100년간 17만 명이 귀화했고, 이는 당시 총인구 230만 명의 20%에 달하는 것이었다.
고려 후반에는 몽골의 수차 내침과 간섭으로 인해 복식과 음식, 언어 분야 등에서 몽골풍이 일었다. 그 여파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몽골은 한국과 인종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같은 군에 속해있다. 한편 조선은 서구인이나 국가권력의 개입 같은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해, 또한 심층적 연구와 논쟁을 통해 창의적으로 서학을 수용했다. 이렇게 서양종교를 수용한 나라는 오직 조선뿐으로 이는 탁월한 문명 수용성과 자정능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서양의 우주관에 대해서도 전통적 우주관으로 재해석하거나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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