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시대와 한국
- 최초 등록일
- 2012.12.11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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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G2시대와 한국에 대한 과제입니다.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미국의 패권과 중국의 부상
1. 미국의 패권
2. 중국의 부상
Ⅲ. 부상하는 G2시대, 그리고 한국의 대책
1. G2시대의 도래와 한미동맹
2. G2시대에 한국의 대응
본문내용
패권국이 될 능력은 있었지만 패권국으로서 세계를 이끌어나갈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미국은 국내정치 및 경제적으로 그리 안정되어 있어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우선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이 1860년대이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은 19세기 후반 매우 폭력적으로 만연해 있었다. 일례로 1866년 5월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백인들이 흑인 46명을 살해했으며, 100군데 이상의 가정집과 교회, 학교에 방화하였다. 1900년 무렵 남부의 모든 주에서 흑인들에게서 투표권과 평등권을 박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60년대까지 흑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 자행되었고, 남부의 많은 곳에서 버스나 식당에서 흑인과 백인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고 이를 어기는 흑인은 연행되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수많은 흑인 폭동이 있었고, 백인들의 폭력과 차별은 지속되었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된 것이 1920년이고, 흑인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공식적으로 1870년이지만 실질적으로 투표에 평등하게 참여하게 된
것은 1960년대이다. 19세기 미국의 노사관계 역시 대단히 불안정하였다. 19세기 말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진압은 대규모의 사상자를 낳았고 진압과정에서 경찰의 발표가 빈번하였다. 1886년 헤이마켓 사건으로 알려진 노사 간 충돌에서는 평화적인 노동자들의 집회를 경찰이 강제해산하면서 폭탄이 터지고 총격이 발생하여 경찰 66명과 군중 200명이 부상당하는 불상사가 있었다. 19세기 말 수많은 노동자들이 빈민가에서 굶주렸고, 질병에 걸렸으며, 탄압 당하였다. 대도시에 노동자들이 폭동이 잇따르곤 했다.
19세기말 미국의 이러한 어두운 모습을 언급하는 이유는 21세기 새로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중국과 비교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면에서 세계를 리드할 소프트 파워가 없으며, 국내에 산적한 빈부격차의 문제, 소수 민족의 문제, 지역격차의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패권국가각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던 19세기말을 보건대, 당시의 미국과 지금의 중국이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