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고려지배층과 신분제도
- 최초 등록일
- 2012.12.11
- 최종 저작일
- 2012.04
- 1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좋은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려지배(귀족)층의 성격과 변화
2. 귀족층의 유지기반 (음서제도와 공음전시)
3. 신흥사대부의 성장과 신분제의 변화
4. 향리(鄕吏)와 백정(白丁)
5. 천민집단과 향, 소, 부곡
본문내용
Ⅰ. 서론
각 시대마다 신분제도와 성격은 각기 다르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문헌을 바탕으로 고려시대 지배층의 성격과 신분제도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구체적으로 고려지배층의 성격과 변화 귀족층의 유지기반, 신흥사대부의 성장과 신분제의 변화 그리고 하층계급인 향리와 백정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고려지배(귀족)층의 성격과 변화
(1) 초기 - 호족
왕건은 송악지방의 호족으로 궁예 휘하 무장들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그들로부터 추대받아 고려의 국왕이 되었다. 고려 건국초에는 지방에 독립적인 호족세력이 군림하고 있었다. 태조 왕건은 지방호족을 포섭하여 신라말의 사회혼란을 수습하여 갔으며 신라의 비부를 받아들이고 후백제를 멸망시킴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호족은 고려를 세운 주역으로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으로 세력이 약해지면서 문벌 귀족화되었다.
<중 략>
(2)노비
천민 중에서도 노비는 고려 사회에서 가장 천시되었는데, 관청에 속한 공노비와 개인이나 사원에 속한 사노비로 나누어졌다.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토지와 노비는 경제적인 바탕이 되었으므로, 노비에 대한 관리는 엄격하였다. 따라서 부모 중의 어느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녀도 노비가 되었으며, 노비를 부모로 둔 자식은 종모법에 의해 어머니 쪽의 소유주에게 귀속되었다. 그러나 노비 중에서도 외거노비는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독립적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고려의 신분 제도는 엄격하여 조상의 신분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세습되었지만, 이와 함께 사회계층의 변동이 부단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향리로부터 문반직에 오르는 경우와, 군인이 군공을 쌓아 무반으로 출세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고려 후기에는 특수 행정 구역인 향, 소, 부곡의 주민들이 일반 양인과 같은 지위로 승격되어 갔고, 외거 노비중세서 재산을 모아 양인의 신분을 얻는 자도 있었다.
공노비는 전쟁포로?특정범죄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정복전쟁과 3국간의 항쟁이 치열했던 삼국시대에는 전쟁포로가 대부분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올수록 전쟁포로보다 특정범죄자가 주종을 이루었다.
참고 자료
박용운?이정신?이진한, 『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 2』, 신서원, 2002.
장유경, 『고려시대사강의』, 늘함께, 1997.
박종기,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1999.
http://home.pusan.ac.kr/%7Ehisedu/noble.htm
http://takbon.netian.com/g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