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의 사림파의 유향소 복립운동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2.12.20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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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태진의 사림파의 유향소 복립운동 정리
목차
1. 성종대 사림파의 유향소 복립운동
1) 사창법 도입의 실패
2) 향촌·음례 도입과 유향소 복립운동
3) 복립 유향소의 실례분석(요지만 서술함)
4) 훈구세력과의 대립과 복립운동의 한계
2. 맺음말
본문내용
1. 성종대 사림파의 유향소 복립운동
1) 사창법 도입의 실패
-중소지주 출신의 성리학파의 향촌질서 확립 노력으로는 세종 말, 문종대의 사창법 시험, 성종대의 유향소 복립운동 등을 구체적으로 들 수 있다.
- 이사법은 소위 음사로 형성된 촌락 공동체와 그것을 배척하고 대안으로서 성리학적 방법을 제시하는 성리학파의 처지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사법 : 정종 3년 12월 정종이 음사 문제를 놓고 이를 금하면 백성이 열복치 않을 것을 염려하자 그 한 방법으로서 이사법을 세웠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사는 중국의 전통적인 촌락제로서 리(里)마다 사(社)가 두어져 춘추 두 차례 리민이 모두 함께 제사하는 제도이다. 국초에 이 제도의 도입이 주장된 것은 향촌질서의 확립의시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손쉬운 방법으로 내세웠던 것으로 여겨진다. 수령이 정기적인 제례를 행하도록 하는 성과를 보기도 하지만, 본래의 목적인 이사의 실시는 이 각기의 토속적인 음사의 강력한 거부로 끝내 실현되지 못하였다.
-사창법이 향촌자치의 방법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는 것은 세종 중기 무렵부터이다. 사창은 저리의 진대제로서 향촌 자치적인 것이 특징이다. 사창은 자혜심 있는 품관이 중심이 되어 진대란 경제적 수단을 통해 리 단위로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 흉황을 타개하는 방법이다.
이전에 시행되었던 의창의 다른 결점들은, 그 법은 지정한 것인데도 그 덕을 본 백성을 찾기 어려우며 관에 기대는 의뢰심이 조장되고 있으며, 의창의 소재가 거주지에서 멀고 또 그 절차가 복잡해 파종실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등이다. 요컨대 의창제 아래서는 촌락민들의 자립의 기회를 기대할 수 없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전래적인 음사의 낭비성도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비판의 골자이다.
세종대의 사창 논의는 관영 의창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대두된 것이다.
사창제는 또한 장리를 일삼는 촌락의 호부, 호강을 배척한다. 지대구군사로서 사창 시험을 주관한 이보흠은 그 결과를 말하면서 “사창을 세웠더니 경내의 백성으로 장리를 받는 자가 지난해에 비추어 적어졌으며 호부침어의 폐단을 금하지 않아도 없어질 것입니다.”라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