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혁, 갑오개혁
- 최초 등록일
- 2012.12.21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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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혁인 갑오개혁에 대해 간단히 조사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갑오개혁이란?
2. 갑오개혁의 배경
3. 개혁 내용
4. 갑오개혁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1. 갑오개혁이란?
1894년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조선 정부에서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개혁운동을 갑오개혁이라고 한다. ‘갑오경장’이라고도 불렸다. 갑오개혁은 내각의 변화에 따라 제1차, 제2차 갑오개혁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해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2. 갑오개혁의 배경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이 실현되지 못한 가운데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도 텐진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게 된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자진해산하자, 동학농민군의 세력이 저하되었고 청나라, 일본의 양국은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에 정부는 청일 양국군대의 철수를 요구했고, 청나라는 일본에 대해 공동으로 철병할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조선내란 발생 예방을 위해 양국이 공동으로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자고 요구한다.
<중 략>
3도 통제군과 각 도의 병영수영각 진영과 진보 폐지
※ 1895년 리시아, 프랑스, 독일 삼국간섭 이후 일본의 세력은 위축된 틈을 타서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연결하여 일본을 견제하려 하자,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박영효가 명성황후의 재등과 조선의 친러화를 막기 위해 왕궁 호위병을 자신의 측근으로 교체하려했고, 이것이 고종의 의심을 사게 되어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면서 갑오개혁은 중도에 중단되고 말았다.
다. 제3차 갑오개혁(을미개혁)
1895년 5월부터 1896년 2월 11일까지 제3차 김홍집 내각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이 내각에서는 일본세력의 퇴조에 따라 박정양을 위시한 친미·친로파가 우세하였다. 그러나 이노우에의 후임으로 부임한 미우라 공사는 일본세력의 퇴조를 만회하기 위해 일으킨 을미사변 이후 그의 의도대로 김홍집내각의 친일적 성격은 강화되었다. 그러한 와중에서 김홍집 내각은 계속 내정개혁을 추진하여 140여 건에 달하는 법령을 의결, 공포하였다. 그 가운데는 7월 9일 ‘소학교령’, 11월 10일 ‘상무회의소규칙’, 11월 15일 ‘건원(建元)’에 관한 건, 11월 15일 ‘연호’를 의정(議定)하는 건, 1896년 1월 1일 태양력의 채용 등의 개혁안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
국가보훈처 카페 http://cafe.naver.com/bohunstar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
네이버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