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베르의 콜베르주의,절대왕정의 경제적 배경
- 최초 등록일
- 2012.12.22
- 최종 저작일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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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콜베르의 콜베르주의,절대왕정의 경제적 배경
목차
Ⅰ. 머리말
Ⅱ. 장 바티스트 콜베르
Ⅲ. 콜베르의 개혁안
1. 상공업분야에서의 개혁
2. 제도의 정비
Ⅳ. 콜베르와 해외상업
Ⅴ. 콜베르주의의 장단점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떠올리면 태양왕이자 절대왕정의 꽃을 피운 루이 14세가 떠오른다. 당시 프랑스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왕 이면에 그를 뒷받침해주던 관료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본문에서 다룰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1619~1683)다. 경제적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자면 루이 14세보다 먼저 나타나는 사람이 콜베르고 그가 당시 취했던 중상주의 정책들은 그의 이름을 딴 콜베르주의(colbertism)이라고 불린다. 중상주의라는 말보다 당시 프랑스의 경제정책들은 콜베르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그 의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콜베르가 취했던 많은 정책들로 인해 화려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봐도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화려한 궁정, 많은 문화·예술 생활들로 인한 재정의 악화와 파탄들은 콜베르의 정책들로 인해 하나둘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콜베르 또한 자신의 정책들로 인해 얻은 이윤들을 루이 14세의 문화행위에 지원했다. 콜베르의 이런 면모는 절대왕정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중 략>
주제를 콜베르를 선택한 이유는 보통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생각하면 루이 14세와 문화적 발전과 사치, 예술 등이 떠오르는데 이 이면에는 이러한 것을 이룰 수 있게 경제력의 바탕이 되어준 콜베르라는 인물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콜베르의 공적이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절대왕정을 이룬 사람은 루이 14세이기도 하지만 콜베르가 없으면 이러한 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콜베르가 어떻게 경제력의 바탕이 되어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했다. 또한 프랑스의 중상주의의 대표자이자 중상주의라는 명칭보다 그의 이름을 딴 콜베르주의라고 불리 울 정도로 그의 경제정책이 매우 궁금했었다.
결과적으로 콜베르는 많은 일을 하고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농촌의 반농반공의 반발과 이후 루이 14세의 낭트 칙령 낭트 칙령은 신교파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약 3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을 종식시킨 칙령이다. 그러나 이는 루이 14세가 1685년도에 낭트 칙령의 전 조항을 폐지하고 신교도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서 많은 신교도들이 프랑스를 떠나 영국과 네덜란드 등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신교도들은 대부분 상업에 종사하거나 군인의 다수를 차지했는데 이들이 떠남으로서 프랑스가 얻게 된 경제적 손실을 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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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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