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4차 십자군 전쟁지원의 득과 실
- 최초 등록일
- 2012.12.22
- 최종 저작일
- 2012.12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베네치아의 4차 십자군 전쟁지원의 득과 실
목차
Ⅰ. 머리말
Ⅱ. 4차 십자군 지원 이전의 베네치아
1. 비잔티움제국과의 상업적 교류
2. 해상강국으로서의 베네치아
Ⅲ. 4차 십자군 지원
Ⅳ. 4차 십자군 지원의 결과
1. 경제적인 득과 실
2. 새로운 영토 확장
Ⅴ. 4차 십자군 지원에 대한 평가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베네치아를 창조한 신은 예술가였다. 아니다. 그는 보석세공인이자 조판공이었으며, 조각가이자 주물공이었고, 또한 화가였다. 신은 베네치아 출신이었다.”
-자크 아나톨 프랑수아 티보(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탈리아 항구도시인 베네치아는 오늘날 매우 아름다운 도시이며, 과거에는 상업, 교역의 호황을 누렸던 지역이다. 베네치아는 주로 해상무역을 통해 발전한 만큼 지중해 패권 특히 상업적인 부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영향력을 기반으로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의 일개 작은 도시가 중세 유럽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작은 도시국가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에 비해 도시의 조직을 매우 엄밀히, 조직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에 비록 처음의 시작은 개펄지대라고 할지라도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중 략>
지금까지 4차 십자군 이전의 베네치아의 이미 보유하고 있던 경제적 바탕과 해상능력을 살펴본 뒤에 4차 십자군 전쟁에 베네치아가 기여한 것과 베네치아가 얻은 것, 또한 이를 총체적으로 비판 옹호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살펴보았다. 이미 자명한 사실은 4차 십자군에서 대규모의 지원이 필요했던 프랑스가 찾아간 곳이 베네치아였을 만큼 당시의 베네치아가 얼마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상 세력이 성장해 있었고, 지중해에 대한 패권이 이미 베네치아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베네치아 상인들이 비잔티움 제국 내에서의 독점적인,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하고 있었고 당시로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대규모의 십자군 운송이 가능했던 것은 항구 도시인 제노바를 제외하고는 베네치아가 유일했다. 또한 두 번째 사실은 콘스탄티노플 정복 후 확보한 영토가 베네치아 경제에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이익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플 시장에서 베네치아 상인들의 상업 활동은 이전보다 축소되었고 이에 더해 분배받은 영토를 실질적으로 정복하고 방어하는데 많은 재원과 인력이 소요되었다.
참고 자료
시오노 나나미 저. 정도영 역. 『바다의 도시 이야기』. 한길사. 2011
한재열. 「12·13세기 해항도시 베네치아의 역사적 형성」. 해항도시문화교섭학. 2009
남종국. 「4차 십자군과 베네치아의 경제 발전」.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연구발표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