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비평문
- 최초 등록일
- 2012.12.27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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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완용 평전에 대한 서평입니다.
목차
1. 이 책은
2. 조선과 고종을 향했던 이완용의 ‘외교’
3. 즉, 이완용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면
4.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본문내용
이 책은…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각각 관료로서의 첫 행보, 정동파 활동, 독립협회 활동, 정계 밖에서의 시기, 을사조약 체결, 한일합병, 합병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이완용은 어린 시절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육영공원에서 익힌 신학문과 영어를 기반으로 미국에 유학을 떠났고, 그가 본 미국의 모습은 이후 그의 정치적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종의 충실한 관료에서 친미파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완용은 갑오개혁 시기 입각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와 연계하였다. 그러나 위기에 대비하여 친일 세력과의 연합을 구상해 놓기도 했으며, 김홍륙 등과의 정쟁에서는 노련함을 발휘하여 정동파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또한 『한성신보』에 맞서 『독립신문』을 적극 후원하면서 독립협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권 침탈로 인해 독립협회는 반러 운동을 벌였고, 이의 중심에 있던 이완용은 전라도 관찰사로 좌천되어 한 동안 정계 밖에서 기회를 노려야 했다. 러일전쟁 후 이완용은 일본공사와의 인맥 덕분에 학부대신에 임명될 수 있었다. 이후 이완용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이토 히로부미의 지원 하에 고종의 양위와 정미7조약의 체결을, 이토 사후에는 소네 통감의 지휘 하에 기유각서의 체결을 주도하였다.
합병 후 이완용은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민중들에게는 매국노, 지배층으로부터는 그들의 버팀목으로서 살아갔다. 일본 지배를 인정하긴 했으나 조선인 차별에 대해서 분노할 줄 알았고 소소한 취미를 가진 글씨의 대가였으며 거액의 재산에 걸맞지 않는 비교적 검소한 정치인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이상 간추린 내용을 기반으로 몇 가지 비판점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조선과 고종을 향했던 이완용의 ‘외교’
책에서는 흔히 알고 있던 바와는 달리 이완용의 반러 활동을 조명해준다. 이완용이 정동파의 수장으로 러시아 세력과 연계하여 아관파천까지 주도했다가 갑자기 반러 운동을 했다는 것은 그를 비판하는 대표적 근거지만, 반대로 이 책을 통해 나는 이완용의 친일 이전의 행적이 단순히 ‘외교’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에 붙었다, 러시아에 붙었다, 일본에 붙은 매국노’가 아닌 조선을 위해 행한 외교의 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