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나폴레옹 시대의 미술과 정치와 관계
목차
Ⅰ. 머 리 말
Ⅱ. 본 문
Ⅱ-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신고전주의 미술
Ⅱ-ⅱ. 신격화 된 나폴레옹
Ⅱ-ⅲ. 대학살의 나폴레옹 시대
Ⅲ. 맺 음 말
Ⅳ.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왼쪽 사진에 찍힌 조각상은 작은 머리와 강렬한 눈빛, 샤프한 콧날과 다물린 입술, 거기다 마치 베일 것 같은 날렵한 턱선을 가진 완벽한 미남이다. 이렇게 얼굴만으로도 완벽한데, 몸은 또 어떤가. 어깨는 작은 머리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넓 으며, 어깨와 팔 모두 근육질로 다부져 보인다. 가슴 또한 넓 고 남자다우며 복부의 근육은 식스팩(six pack)이다. 이런 결 점 없는 근육질 몸매 또한 놀라운데, 마지막으로 키와 비율까 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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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이 끝난 후 1804년 12월 18일, 다비드는 ‘황제 최고의 화가 (First Painter to the Emperor)’에 선임되었다. 이는 과거 왕의 ‘최 고 화가(First Painter)’와 같은 직위이다. 다비드는 대단히 만족해하 며 일반인들로 하여금 며칠 동안 입장료 없이 《사비니 여인들의 중 재, 1799》를 관람할 수 있게 했다.8)
나폴레옹은 1807년 러시아의 쾨니히스 베르크 시 근교에서 러시아와 프러시아 의 연합군을 격파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길 이 기념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 공모 내용은 ‘에일로 전투 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날 전쟁터를 시찰 하는 황제는 그 끔찍한 광경에 연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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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과연 이 글에서 다룬 정치에 봉사하는 미술이 과연 18-19세기에만 있었을까. 혹 18-19세기 미술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현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옛 일로만 느껴지진 않았는가. 사실 예술이 정치적으로 쓰이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꼭 예술 뿐 만이 아니다. 요즘은 예술보다 파급력이 더 강한 TV 등의 미디어 매체가 나폴레옹 시대의 예술처럼 정치적 · 개인적 목적에 봉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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