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소개 - 한글날의 발전사
- 최초 등록일
- 2013.01.11
- 최종 저작일
- 2013.01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훈민정음 소개 - 한글날의 발전사에 관해 조사하는 과제 입니다.
훈민정음 소개 - 한글날의 발전사에 관해 작성 했습니다.
훈민정음 소개 - 한글날의 발전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구매해 주시거나,
훈민정음 소개 - 한글날의 발전사에 관한 리포트 작성이 필요하신 분이 구매해 주세요.
목차
1. 억압받던 시기
2. 공휴일시기
3. 기념일 시기
본문내용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으로부터 560년이 흘렀고, 첫 ‘가갸날’기념식을 치른 1926년으로부터 80년이 지난, 2006년 10월 9일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쇠게 되었다. 한글날의 발전 과정을 ‘억압 받던 시기’(1923~1944), ‘공휴일 시기’(1945~1990), ‘기념일 시기’(1991~2005)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억압받던 시기
1919년 삼일운동을 계기로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비교적 언어와 문자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었다.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창제’ 8번째 회갑(480년)이 되는 음력 1923년 12월 27일에 ‘훈민정음 창제 기념식’을 개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행사에 대해 추후 보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해보면 기념식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거나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은 공동으로 훈민정음 문자 ‘반포’를 기려 반포한지 480년, 곧 8회갑이 되는 날인 1926년 9월 29일을 ‘가갸날’로 이름하여 기념식을 가졌다. ‘가갸날’이라는 이름은 대중에게 익숙한 ‘가갸’라는 이름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우리 문자를 우리 민중에게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필연적 염원과 그렇게 하겠다는 강한 다짐을 담은 이름이기도 했다. 이것이 오늘날 ‘한글날’의 뿌리이다. 1928년에 ‘한글’이라는 말이 퍼져서 사용되면서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1937년부터 1944년까지는 기념식을 갖지 못했다.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과 1941년 벌어진 태평양 전쟁으로 일제가 집회를 금지 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