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리학과 율곡 이이
- 최초 등록일
- 2013.01.13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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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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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율곡 이이의 생애
Ⅲ. 율곡이이의 사상
ⅰ) 율곡사상의 특징
ⅱ) 우계, 율곡의 심성논쟁
ⅲ) 율곡사상의 사상사적 의의
Ⅳ. 율곡학파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율곡이이는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그는 이황 이후의 조선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이며, 그의 학문 계통을 이은 인물들인 김장생, 송시열 등 조선후기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학문적 기틀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조선사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율곡이이의 생애 통해서 그의 사상이 형성된 배경과 특히 우계 성혼과의 심성논쟁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살펴보도록 할 것이며, 또한 연배는 그보다 높지만 역시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볼 수 있는 이황의 사상이 가지는 특징과 비교를 통해서 율곡사상이 가지는 특징을 더 부각시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율곡 이이의 사상이 가지는 사상사적 의의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율곡 이이의 생애
율곡의 생애는 크게 4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기가 입지기(立志期: 1세부터 28세까지)로 율곡 이이가 시류와 도학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하다가 어머니 사임당과의 사별을 기점으로 마침내 홀로서기를 하고 금강산에서 하산한 후 삶의 큰 뜻을 세운 시기 이다.
율곡은 1536년 음력 12월 31일 출생하여 3세 때 말과 글을 배웠으며, 6세에 강릉 외가에서 어머니를 따라 서울 수진방(壽進坊: 현 청진동)에 있는 서울집으로 올라왔다. 7세 때는 어머니에게 사서를 배우고 진복창전을 지었는데, 진복창은 조선조 명종(明宗)때 윤 원형(尹元衡)에게 붙어 사림(士林) 추방(追放)에 적극 활약한 자이다. 율곡이 어릴 때 이웃에 진복창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린 눈에도 사람됨이 몹시 교활하고 간악해 보여 붓을 들어 글을 지었던 것이다.
"군자(君子)는 덕이 안에 쌓여 있는 까닭에 그 마음이 늘 태연하고 넓고 너그럽다. 소인(小人)은 교활이 안에 가득차 있는 까닭에 그 마음이 늘 안절부절 못한다. 내가 진 복창(陳復昌)의 사람됨을 보니, 속으로는 남몰래 안절부절 못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고 너그러운 체한다. 이런 사람이 뜻을 얻어 권세를 쥐게 된다면 그때의 닥칠 재난이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율곡전서 권33 부록 연보> 진복창전
어린 율곡의 이런 예측은 신통하게도 적중이 되었는데 진복창은 훗날 크게 출세하게 되었고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당시 권세가인 윤원형에게 붙어 죄없는 선비들을 수 없이 숙청하는 중심 인물이 되었다. 그 후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선비를 많이 죽여 역사가에 의해 독사(毒蛇)라 기록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