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근대와 식민의 서곡 _ 김동노 저
- 최초 등록일
- 2013.01.15
- 최종 저작일
- 2012.10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할인쿠폰받기](/images/v4/document/ico_det_coupon.gif)
소개글
근대와 식민의 서곡을 읽고나서 요약과 느낀점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로인해 조선을 안으로부터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19세기 후반에 맞이한 위기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선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로인해 조선의 개국과 이에 따른 외세의 위협이 생겨나면서 조선의 내적 위기를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조선 내부에서 나타난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징후는 증가하고 있던 농민운동이다. 1862년 진주민란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조선 체제의 안정성을 밑으로부터 깨어지는 큰 계기였다. 진주민란이후 농민운동의 발생횟수는 증가하였고 개항이후 많아지면서 동학농민운동까지 발전되었다. 농민운동의 발생은 조선의 내적 모순을 잘 보여주는데 농민경제의 파탄, 국가재정의 빈곤과 함께 신분질서의 변화로 인한 체제의 안정성 약화 등으로부터 기인한다. 우선 농민경제의 파탄과 국가재정의 빈곤은 농민의 생산이 국가의 세금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 즉 삼정의 문란에서 나왔다. 각 관료들과 이서계급의 부정은 물론 조세제도의 문제였다. 신분질서의 변화로는 조선의 정치구조가 신권이 강화되면서 분권화된 상태를 띠면서 지방정치에서도 향촌사회에 대한 정부의 침투가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향촌사회를 통제했던 사족세력은 지방정체에서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족들은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로 인해 효율적으로 향촌사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제도가 안정된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를 겪게 되어 양반의 증가와 천민의 급격한 감소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신분질서에 근거한 사족들의 통제력이 행사되기 힘들어졌다. 변화를 통해 천민들과 부농들은 신분을 탈피하거나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좋은 측면에도 불구하고 조선사회의 체제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이 변화는 체제의 안정성에 결정적인 위협요인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