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시대신사
- 최초 등록일
- 2013.01.31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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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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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紳士)란 진사를 포함한 관직경력자와 아직 관료가 되지 못한 학위소지자(거인, 공생, 감생, 생원 등의 사인)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과거제, 연납제, 학교제, 등을 매개로 하여 정치·사회적인 지배층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현직관료는 양면적 신분 소유자인데 그 이유는 부임지에서는 관원이고, 고향에서는 신사이기 때문이다.
신사가 되려면 최소 유학의 입학시험인 동시에 합격하여 생원의 자격을 얻어야했다.
신사가 어느 정도의 재부가 없으면 신사로서의 독특한 생활이나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돈 그자체가 신사 신분의 필수조건은 아니었다.
평민지주나 상인은 부자라도 신사가 될 수 없었으나 단지 돈으로 관함이나 학위를 사야만 신사신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연납이라 한다. 하지만 빈부여하 불문하고 관함이나 학위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신사로 인정하였다.
신사가 출현하게 된 배경은 세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과거제와 학교제의 결합이다. 전국의 부·주·현에 일률적으로 중등학교 격인 “유학”이 설립되었다.
유학의 학생인 생원에게만 과거 응시자격을 주었다. 따라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학에 입학하여 생원이 되어야 했다. 두체계가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면서 학교가 과거 제일단계로 병합되고 생원의 사회적인 지위도 제고되었다.
두 번째로 신과 함께 사인의 특권층으로 승격된 점이다. 생원의 지위와 대우가 높아지고 요역우면혜택, 세금감면 등을 인정하면서 사회의식도 달라졌다.
세 번째로 신과 사 사이에 “동류의식”이 발생하였다.
사대부로서의 자의식과 천하에 대한 사명의식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관직경력자와 유사하였고, 언어적·문화적면에서 신과 사가 유사했다.
동향의식의 발로, 혹은 신과 사 사이에 혼인을 통한 유대관계를 통해 동류의식이 발생하게 되면서 신과 사는 신사로서 계층적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고, 명말 부터는 “향신공의”, “사인공의”뿐 아니고 “신사공의”가 형성되었다. 이런 동류의식이 발생하는 결절점은 유학내의 공자묘와 서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었고, 그 중에서도 사학인 서원이 유학보다 더욱 효과적인 곳이었다. 이렇게 동류의식이 생기고 하나의 계층으로 인식되어 신사로 연칭 되었다.
참고 자료
오금성,『명청시대 사회경제사』, 이산(2007), pp343~pp372.
장중례,『中國의 紳士』金漢植 외 공역, 서울: 신서원(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