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의 시 세계 탐구
- 최초 등록일
- 2013.02.18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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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 대표적인 시인인 이용악의 시 세계를 탐구한 논문입니다. 이 과제를 제출한 학과목에서 A+의 학점을 수여받았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유랑의 시작과 상실감
2. 아버지의 부재와 자아성찰
3. 귀향에 대한 좌절과 불귀(不歸)의식
Ⅲ. 꼬리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 이용악의 생애
이용악은 1914년 11월 23일 함경북도 경성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한 이유로 이용악의 생애의 대부분은 가난과 유랑과 가족의 해체와 같은 비극적 체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체험은 이용악의 시 대부분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최제서는 이용악을 생활을 생활대로 생활에서 우러나는 말로 노래한다는 의미에 있어서의 인생파 시인이라고 평할 정도로 이용악의 시 전반은 그의 생애를 다룬 것이다. 이러한 시적 진실성은 1930년대 후반 서정주, 오장환과 더불어 이용악이 시삼재(詩三才)라 불리는 이유가 된다.
이용악의 생애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용악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경성보통학교와 서울의 어느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1934년 도일(渡日), 니혼[日本]대학 예술과를 잠시 다녔으며 죠오지[上智]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이 기간 중『신인문학』1935년 3월호에 시 ?패배자의 무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의 첫 시집『분수령』(1937)과 제 2시집『낡은집』(1938)은 모두 동경에서 간행되었다. 1939년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인문평론』의 편집기자로 근무하는 한편, 1940년 무렵에는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일제의 폭압적 식민 지배가 극에 달해 가던 때인 1942년 고향 경성으로 귀향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상경(上京), `조선문학가동맹`의 맹원으로,『중앙신문』의 기자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제 3시집『오랑캐꽃』(1947)과 제 4시집『이용악集』(1949)을 내는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수행한다. 1949년 모종의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0년을 선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과 함께 출옥, 1951년 3월부터 1952년 7월까지 조선문학가동맹 시분과 위원장 일을 보면서 한국전쟁기를 보낸다. 한국전쟁 후 벌어진 남로당계 문인 숙청에서 살아 남은 그는, 1956년 11월부터 `조선작가동맹출판사`의 단행본 부주필을 역임하는 한편,『조선문학』1956년 9월호에 발표한 ?평남관개시초?로 1956년 조선인민군창건 5주년 기념 문학예술상 시부문 1등상을 받는다.
참고 자료
諸海萬 ,『國文學論集 - 檀國大學校 國語國文學科』, 1994
오세영, 국경의 밤과 서사시의 문제,『국어국문학』, 75호, 1977
최동호, 북의 시인 이용악론,『현대문학』, 1989
최현식, 상실과 불화를 견디는 내면의 힘,『새로 쓰는 한국시인론』, 백년글사랑,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