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조약강제」, 『한국사 시민강좌』19, 일조각, 1996.를 요약함
- 최초 등록일
- 2013.02.18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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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조약 강제의 경위와 문제점
3. 강제조약 무효화 운동과 그 의의
4. 맺음말
5. 구체적인 계획들
본문내용
(1) 병합은 어디까지나 동양평화를 위한 것으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2) 침략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책임은 있으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위의 사실 가운데 (1)은 ‘병합’ 당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으로서, 한국은 본래 ‘허약한’, ‘완미한’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러시아 등이 한국 지배를 노려 한국의 존재 자체가 동아시아의 화근이었는데 ‘강국’ 일본이 그 나라들을 차례로 물리친 다음 한국을 병합함으로써 동양평화를 이룩하는 한편 시정개선으로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2)는 근자에 역사인식의 ‘변화’로 수정을 거친 것으로서, (1)의 인식에서 동양평화론을 버리고 도덕적인 잘못은 인정하면서 법적으로는 사실상 (1)의 입장을 견지하는 인식형태다.
<중 략>
(가) 이 협정은 고종황제의 강제퇴위, 한국군대의 강제해산 등의 일과 함께 준비되었기 때문에 무력동원에 대한 배려는 어느 때보다도 더 컸다. 일본각의는 7월 21일자로 한국주차군을 지원할 병력으로 1개 혼성여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여 실행에 옮겼다.
(나) 이 협정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의 이름으로 서명?날인되었는데, 양측 모두 전권위원이란 호칭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통감이란 직책은 ‘을사늑약’에 의해 설치된 것이므로 그간 ‘을사늑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한국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직책은 가공의 것이 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중 략>
하지만 1억이 넘는 일본인들을 하나하나 다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 작은 것은 1대1이나 크게는 저번에 말한 웹사이트와 같은 방법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선은 일본에게 한국을 알리는 것이 먼저이다. 위의 내용에서와 같이 한국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존재도 모르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는 가지 않지만 말이다. 따라서 웹사이트도 처음에는 무거운 문제보다는 가겹게 한국을 소개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다.
글을 쓰고 나니 나는 일본의 역사문제를 알리기에는 좋은 입장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고 자료
박영재, 「근대 일본의 침략주의적 대외론과 한국론」, 『한국사 시민강좌』19, 일조각, 1996.
윤병석, 「일제의 구한국강점과 무력위협」, 『한국사 시민강좌』19, 일조각, 1996.
이태진,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조약강제」, 『한국사 시민강좌』19, 일조각, 1996.
이장희,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법적 청산」, 『한?일간의 국제법적 현안문제』, 아사연, 1994.
도츠카 에쓰로, 「일사보호조약의 불법성과 일본의 책임」,『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까치, 1995.
프랑시스 레이, 「대한제국의 국제법적 지위」,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까치,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