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룬 내용입니다. 성적은 A+받았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티베트의 역사
1. 티베트제국의 흥망
2. 제국 멸망 이후의 티베트 : 원나라와의 관계
3. 청나라와의 최왼 관계
4. 청조 이후의 티베트의 역사
Ⅲ.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950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사천성에 강제로 편입한 이후, 티베트의 독립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은 지속되어 왔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중국의 탄압에 맞서 티베트의 승려들이 연이어 분신자살을 하고, 정부청사를 폭파시키는 등 분리주의 운동이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실질적 자치를 허용하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중국의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티베트의 안정과 중국의 통합을 해치는 모든 계획을 엄단할 것” 이라며 강경한 의사를 내비치는 등 사태는 알 수 없는 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인 2009년 미국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를 만나지 않아 국내외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작년과 올해에는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고 "티베트가 독특한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인 독자성을 보존해 가고 있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가, 이번에는 중국의 비난이 거세지자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의사를 번복하기도 했다.
<중 략>
1949년 7월 중국 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공산주의의 위협을 느낀 라사 정부는 티베트로부터 모든 중국인들을 추방했으며, 중국 공산당은 이것을 제국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으로 격렬히 비난했다. 1949년 11월 24일 북경 라디오 방송에서는 제10대 판첸라마가 모택동에게 티베트를 해방시켜 줄 것을 호소했다고 타전하였으며, 1950년 1월 1일 중국 정부는 대만과 티베트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약속했다. 10월 7일 중공군은 티베트 침공을 시작하였으며, 국제사회에 대한 티베트의 호소는 한국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달라이 라마는 또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1950년 12월 19일 그는 라사 남쪽 국경지역으로 피신했다. 중국 측은 17개항의 수정안을 최종적인 것으로 제시하였고, 티베트 측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1951년 5월 23일 수정안에 서명했다. 달라이 라마는 귀향했지만, 이제 티베트는 청조의 멸망과 함께 누려온 독립을 사실 상 포기하였으며, 중국에 대한 티베트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티베트가 제기하는 정치적 독립의 요구는 법적으로 명분없는 주장이 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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