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의 녹채 해석과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3.03.11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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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소개
2. 감상문
본문내용
◈ 작가 소개
왕유(701-761, 字는 摩詰). 그는 위대한 詩人이었을 뿐 아니라, 논서·서예·음악 등 모든 방면에 정통한 예술가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왕유는 21살에 進士로 급제하였고 음율에 정통해 大樂丞으로 임명되지만, 황제의 음악을 몰래 상연한 것에 연루되어 좌천되었다. 실의와 閑居의 생활을 하던 중 다행히 다시 복직하였으나, 정치적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장구령이 이임보의 모함으로 파면되자 낙담하였다. 이 때부터 隱居하고자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꼬 監察御使란 직책을 받고 변방 凉州로 출사하였는데, 이때 여러 곳을 遊歷하며 변새시가 많이 지어졌다.
< 중 략 >
◈ 감상문
과제를 받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시를 보면서 ‘왕유’라는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와는 다르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고, 그러한 역경이 그를 진취적인 유학자에서 소극적이고 은둔적인 불자로 변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녹채(鹿柴). 단순히 푸른 색감을 나타내는가 했더니, 그것은 그가 장안에 있을 때 구입했던 망천의 별장 중 한 곳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시처럼 이 별장이 푸르러서 지은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왕유는 이곳에서 詩友 裵迪과 함께 오언절구(五言絶句) 20수를 지어 《망천집 輞川集》에 실었는데, 20수 가운데 제4수가 녹채이다. 망천집은 아직 안녹산의 난 전으로 아직 그가 인생의 풍란을 맡기 전에 지어서인지 매우 감성적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