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国志 삼국지 晋 陈寿撰 진나라 진수 편찬,宋송나라裴松之注배송지 주석 蜀书촉서6 관우장비마초황충조자룡전
- 최초 등록일
- 2013.03.16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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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志 삼국지 晋 陈寿撰 진나라 진수 편찬,宋송나라裴松之注배송지 주석 蜀书촉서6 관우장비마초황충조자룡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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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催◎關張馬黃趙傳第六古
賢街關羽字雲長,本字長生,河東解人也。
관우는 자가 운장이며 본래 자는 장생이며 하동 해현 사람이다.
亡命奔?郡。
관우는 망명하여 탁군으로 달아났다.
先主於?里合徒衆,而羽與張飛爲之禦侮1)。
선주 유비는 향리에서 무리를 규합하니 관우가 장비와 막는 무장이 되었다.
先主爲平原相,以羽、飛爲別部司馬,分統部曲2)。
선주 유비는 평원상이 되어 관우,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아 부곡을 나눠 통치하게 되었다.
先主與二人寢則同床,恩若兄弟。
선주 유비는 관우, 장비 두 사람과 잠잘 때 같은 침상에서 자니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
而稠人3)廣坐4),侍立終日,隨先主周旋,不避艱險。
많은 사람이 종일 시립하니 선주를 따라 주선하며 어려움과 험함도 피하지 않았다.
蜀記曰:曹公與劉備圍呂布於下?,關羽啓公,布使秦宜祿行求救,乞娶其妻,公許之。
<중 략>
건흥 5년에 조운은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주둔했다.
明年,亮出軍,揚聲由斜谷道,曹眞遣大衆當之。
다음해에 제갈량이 군사를 내어 야곡도에 명성을 드날리니 조진이 많은 군사를 파견해 감당했다.
亮令雲與鄧芝往拒,而身攻祁山。
제갈량과 조운은 등지와 가서 막으니 몸소 기산을 공격했다.
雲、芝兵弱敵彊,失利於箕谷,然斂衆固守,不至大敗。
조운과 등지는 병사가 약하고 적이 강하여 기곡에서 이익이 없어서 군사를 거두어 지키니 큰 패배에 이르지 않았다.
軍退,貶爲鎭軍將軍。
군사가 물러나며 진군장군으로 폄하되었다.
雲別傳曰:亮曰:“街亭軍退,兵將不復相錄,箕谷軍退,兵將初不相失,何故?”
조운별전에서 말하길 제갈량은 말했다.“가정에서 군사가 물러남은 병사와 장수가 다시 기록하지 않고 기곡의 군사가 후퇴함은 병장이 초기에 서로 잃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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