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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3.26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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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1930년대 산업
Ⅲ.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수온
Ⅳ.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진남관
Ⅴ.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선사유적
Ⅵ.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천일고무공장
Ⅶ. 전라남도(전남) 여수의 양식어장
본문내용
Ⅰ. 개요
여수는 삼한시대에 馬韓 땅에 속했으며 상암동 일대에 마한 54국 중 爰池國이 있었다. 그 후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의 영역에 속했던 이 고장은 백제 성왕 16년(538년) 전국을 5방으로 나눌 때 南方 久知下城(장성) 관하 欿平郡(순천)의 猿村縣(여수)과 突山縣(돌산)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이곳은 9주 가운데 하나인 武州(광주)에 속하게 되고 감평군을 昇平郡(순천)으로 그리고 원촌현이 海邑縣(여수)으로, 돌산현은 廬山縣(돌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태조 23년(940년)에 전국의 주, 부, 군, 현의 이름을 고쳤다. 이에 따라 이 고장은 신라시대와 같이 승평군(순천)에 속하면서 해읍현이 麗水縣으로, 여산현이 다시 돌산현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라는 이름이 나오며 지금까지 여수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 때와 같이 승평군의 거느림을 받는 것은 여전하였다. 여수를 관할하던 승평군은 성종 때(983년)에 昇州로, 현종 때(1018년) 다시 승평군으로 바뀌어 가면서도 예전과 같이 여수를 그의 屬縣으로 하는 제도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까지 계속되었다. 고려 말 충정왕 2년(1350년)에 처음으로 현령을 상주시켜 비로소 순천과 구분된 독립 행정 단위가 되어 조선 태조 5년(1396년)까지 47년간 계속 되었다. 그 후 여수현과 돌산현은 폐현되어 순천부에 속하게 되었다. 여수현을 태조 이성계가 폐현시키는 전말은 다른 기록에도 보인다. 여수현의 마지막 현령이었던 吳欣仁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海州吳氏 족보에 의하면 “태조는 나라를 세운 후 신왕조건국교지를 전국의 수령에게 보냈는데, 이때 여수 현령이었던 오흔인이 고려조에 충성을 맹세하고 왕의 사신을 거절하니, 태조가 이를 듣고 즉각 여수현을 폐현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역향으로 몰린 여수는 이후 502년간(태조 5년~고종 34년, 1396~1897) 순천부에 속하게 된 것이다.
한편, 조선 정부는 여수에 다음과 같은 군사 관련 기구를 두었다
참고 자료
김계유, 여수여천 발전사, 반도문화사, 1988
김희태, 전남지방의 향토사 연구 현황, 전남사학 7,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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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문화원, 향토사료교본, 1984
여수문화원, 여수문화기행, 1997
전라남도여수교육청, 우리고장의 문화 유산(장학자료 97-1),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