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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3.03.26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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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조선총독부의 고문서
Ⅲ. 조선총독부의 학력주의
Ⅳ. 조선총독부의 관리임용
Ⅴ. 조선총독부의 기록물관리
Ⅵ. 조선총독부의 보통문관시험
본문내용
Ⅰ. 개요
일본은 다양한 중공업을 식민지에 설치한 유일한 국가로서 이는 상대적으로 다른 제국과 비교할 때 매우 주목할 만하다.
산업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식민지에서의 거대한 철도망을 조직하여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발달된 철도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도로와 항만과 같은 인프라의 발달은 1945년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앞서도록 하였다.
광대한 운송 사회간접시설은 일본인과 한국인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더욱 용이하게 하였다. 대만과 비교한 한국에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 해석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식민지는 일본 기업가에게 상상도 못했던 설비와, 엄청나게 싼 운송비, 안정된 통화와, 신용, 은행이용을 용이하게 해주고 무엇보다 철도와 같은 물리적 구조 외에 법 위에서 안정적이고 예측가능 한 투자 환경을 가능케 하는 상업적, 공업적 근간을 제공하였다. 식민지의 인프라의 발달은 세계경제속의 더욱 발달한 나라와 경쟁키 위한 한 부분이었고, 시장이 작은 일본은 인접국가에 집중하고 그것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즉 식민지의 공업하는 살벌한 경제 전쟁에서의 하나의 탈출구였던 것이다.
1920년대, 일본이 국외에서의 자유무역과 국내의 자유주의를 추구할 때 한국에서도 식민지인의 이해를 고려해 주는 커다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보호 무역 주의가 성행하자 일본은 국내에서 권위적으로 한국인에게는 강력한 획일화된 폭압적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세계구조에서의 열등한 위치와 일본의, 식민지를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을 위한 부속품으로 보는 일본 제국주의의 특이한 시각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Ⅱ. 조선총독부의 고문서
조선 고문헌에 대한 일제의 관심은 조선의 식민화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즉 일제는 관습조사사업을 벌이면서 조선 재래 문헌의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관습조사사업은 한국을 지배하기 위하여, 그 기초사업으로 한국의 ‘관습’과 ‘제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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