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문학인생, 김동인 작품관, 작품경향 등 김동인 총정리
- 최초 등록일
- 2013.04.07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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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소설가 김동인
2. 김동인의 문학 인생
3. 김동인 작품경향
3-1. 업적
3-2. 김동인 친일 행각
3-3. 김동인의 작품 세계
4. 김동인 문학론
4-1. 문학적 특성
4-1. (1) 자연주의
4-1. (2) 탐미주의
4-1. (3) 인형 조종술
5. 김동인과 그의 문학 세계
5-1. 생애와 문학관
5-2. 단편소설과 자연주의의 한계
본문내용
1. 소설가 김동인(金東仁.1900.10.2∼1951.1.5)
소설가. 호 금동(琴童)ㆍ금동인(琴童人)ㆍ춘사(春士). 창씨명 곤토 후미히토(金東文仁). 평양 진석동(眞石洞)에서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거쳐 카와바타(川端畵塾)미술학교에서 화가가 되고자 미술 수업을 했다. 1919년 2월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요코하마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자비(自費)로 출간, 여기에 우리말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귀국 후 출판법 위반 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목숨>(1921) <배따라기>(1921) <감자>(1925) <광염(狂炎) 소나타>(1929)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1925년대 유행하던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24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1931년 서울 행촌동(杏村洞)으로 이사하여 <결혼식>(1931) <발가락이 닮았다>(1932) <광화사(狂畵師)>(1935) 등을 썼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雲峴宮)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학예부장(學藝部長)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였다.
<중 략>
1931년 1월에는 <발가락이 닮았다>가 [삼천리]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내용도 욕망 때문에 훼손된 한 남자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그런 다음 1936년 3월에는 [문장]지에 <김연실전>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김동리의 비판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김동리는 상당히 격렬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때 이미 그(김동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도 꿈도 취미도 아무것도 그에게는 있는 것이 없고, 간신히 그에게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은 `음란`과 `쌍말`뿐이었다. 이것만이 간신히 그에게 자극을 남긴 것은 그만치 그가 완전히 따라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김동리저 <문학과 인간> 10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