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목재수급,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국제수지,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식민지기(식민지시대,일제강점기) 종교
- 최초 등록일
- 2013.04.12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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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임야소유권
Ⅱ.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목재수급
1. 용재의 생산량 추이
2. 용재의 수이입량 추이
3. 용재의 수이출량 추이
4. 용재의 이입량과 이출량 비교
Ⅲ.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국제수지
1. 직접투자 : <일본의 직접투자(주식, 사업투자, 차입금) 추계>
1) 주식(=본점회사 출자)
2) 사업투자(=지점회사 투자)
3) 차입금
2. 기타투자
Ⅳ.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임야소유권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는 권영욱(1965)을 필두로 신용하(1982), 강영심(1983·1984), 심희기 1991a; 배재수 외(2001)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밖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검토할만한 논저 또한 적지 않다. 이들 연구는 일련의 소유권 정리과정을 통해 식민지기에 근대적 임야소유권이 성립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목적이나 결과는 국유림창출=민유림수탈이며, 여기에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 공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선행연구에 동의할 수 없다. 실증에 의하여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고 사료로부터 읽을 수 있는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 다섯 가지 논점으로 나누어 제3절까지의 서술에 기초하여 논의한다.
<중 략>
2. 용재의 수이입량 추이
용재 수이입량의 추이와 특성을 ①제1기(1910년~1919년), ②제2기(1920년~1928년), ③제3기(1929년~1932년), ④제4기(1933년~1945년)로 나누어 정리했다. 식민지기 외국 및 일본에서 들여 온 총 수이입량은 약 875.5만㎥로 같은 기간 국내소비량의 12%를 차지하였다. 전 기간 동안 수입량의 비중은 38%, 이입량의 비중은 62%였으며, 이입량은 대부분 1933년부터 급격히 증가하였다. 총 수이입량은 용재 생산량의 추이와 마찬가지로 제2기와 제4기에 증가하였다. 그러나 수입과 이입을 비교하면 상반된 패턴을 보여주는데, 수입은 제2기와 제3기에 평균 수입량 이상을 수입한 반면 이입은 제4기에만 평균 이입량을 초과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수입재와 이입재는 매우 경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목재 이입량의 증가는 제4기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중 략>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한국 초등학교의 교과 과정은 일본어가 필수 과목이었고, 1921년의 「第2次朝鮮敎育令」이후에는 일본 역사가 추가되었다. 교과서는 일본어로 씌어 졌으며, 수업용 언어도 조선어 및 한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본어였다.
후기로 갈수록 교육 과정의 차이는 점점 더 커졌다. 인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교육의 인도화가 활발해졌다. 한국은 반대의 방향을 걸었다. 1938년 이후에는 조선어 및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고, 초등학교의 수업용 언어도 완전히 일본어로 바뀌었다.
참고 자료
김낙년 / 식민지기 조선의 국제수지 추계, 경제사학회, 2004
배재수 / 식민지기 조선의 목재수급 추이 및 특성, 경제사학회, 2005
이우연 /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 : 산림녹화와 소유권, 경제사학회, 2006
이우연 외 1명 / 식민지 조선의 임금 수준과 구조, 경제사학회, 2007
오성철 / 식민지기 교육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 초등학교 규율의 내용과 형식, 한국교육사학회, 2000
허수 / 일제하 사상 논쟁에 나타난 종교 개념의 충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