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상사
- 최초 등록일
- 2013.04.15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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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춘추전국시대 열국의 항쟁과 사회변동
2.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들.
3. 제자백가 번성의 의의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춘추전국시대 열국의 항쟁과 사회변동
⑴봉건씨족사회의 해체와 사민사회 성립
서주시대의 사회구조와 경제체제를 보면 경제는 농업경제였으며 사회는 봉건귀족들과 서인들로 구성, 조직되었던 계급사회였다. 주 왕실, 제후, 경대부 및 사 계층으로 구성된 지배계급은 정치, 군사적으로는 권력과 무력을 장악하고 경제적으로는 유일한 생산수단이었던 토지를 독점하였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열국의 형성과 상호간의 공벌, 병합은 많은 귀족들의 몰락을 초래하였는데, 이 귀족들의 몰락 과정에서 많은 공인들이 해방되었으며, 자유로이 상품 생산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춘추 중기 이후부터 점증하는 각 국간의 대립과 항쟁, 우경과 철제농구의 보급 등의 농업생산기술의 진보와 발전 그리고 수공업과 상업 같은 새로운 경제의 발달은 급속한 사회제도의 변화와 발달을 야기하였는데, 이 같은 현상은 전국시대에 진입하면서 더욱 가속되었다. 그리하여 종래 동일혈연에 기반한 씨족공동체가 급속도로 해체되면서 자작의 개별 소농민계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중 략>
군주가 신하, 관료들을 채용하여 직무, 직책과 직권을 부여하였으면 반드시 독참국지, 순명책실, 형명, 참오법 등의 원칙을 통하여 신하, 동료들의 공과를 정확히 평가하여 공훈이 있으면 상을 내리고 허물과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야하는 신상필벌을 주장하였다. ‘세’는 군주만이 장악하는 최고 고유의 통치권이었으며, ‘술’은 냉철한 이성과 합리성으로 신하, 관료들을 평가하는 군술이었다. 그리고 ‘법’은 모든 계급과 계층을 초월하여 공정, 공평하게 시행되는 성문법이었다. 법가들은 이 같은 법가사상을 통치기량으로 채택하여 변법, 개혁을 추진하면 부국강병을 이루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가사상은 군주권 확립, 부국강병 달성을 위한 도구로 시행되었다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 자료
유가철학의 이해/ 추 차이, 원버거 차이 지음 김용섭 옮김// 소강출판사
묵자/이준영 // 자유문고
노자/옮긴이 김학주 펴낸이 전명회// 연암서가
춘추전국시대의 법치사상과 세, 술/ 이춘식// 아카넷